한때 구식으로 평가받던 이 업체의 반도체 생산 방식은 다품종 소량 생산을 요구하는 반도체 업계의 환경 변화에 따라 재조명되고 있다. 올 3분기 영업이익은 1년 새 39%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달에만 주가가 22%나 상승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삼성전자보다 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고평가돼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25일 한국거래소와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달 들어 이날까지 국내 반도체 종목 중 외국인 순매수 규모가 가장 큰 곳은 DB하이텍(34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SK하이닉스에 대한 외국인의 순매수 규모는 42억원에 그치고, 삼성전자는 9426억원의 순매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DB하이텍은 사정이 다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예고에 국내 정보기술(IT) 종목에 대한 관심이 식고 있지만 유독 DB하이텍에만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 국민연금 역시 올 들어 이 종목을 사들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이 종목을 13.3% 보유하고 있다. 지난 2월 8일(10.3%)보다 지분율을 3%포인트 늘린 것이다.
주요 투자자들이 DB하이텍에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올 3분기 실적 급증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3분기 영업이익은 459억원으로 작년 3분기(330억원) 대비 39% 급증할 것으로 추정된다. 연간 영업이익 기준으로는 작년보다 9% 증가한 1558억원이다. 올해 초만 해도 이 종목에 대한 실적 전망은 어두운 편이었다.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분야 중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을 대대적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특히 파운드리 시장은 대만 TSMC의 독주가 계속되는 분야로 삼성전자까지 진입하며 DB하이텍의 먹거리는 더욱 감소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올 2분기부터 반도체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IoT와 AI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관련 수요가 급증하며 여러 반도체를 소량 생산하는 파운드리 업체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
엄밀히 구분하면 삼성전자와 TSMC 파운드리 사업은 소품종 대량생산에 유리한 구조다. 반도체 생산 시 면적이 큰 12인치 웨이퍼(반도체 원판)를 이용해 그래픽 반도체 등 고성능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이에 반해 DB하이텍은 8인치 웨이퍼에 특화된 업체다.
작년까지 8인치 웨이퍼는 성능이 낮은 반도체 생산에 주로 활용됐기 때문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올 들어 자동차 전자장치(전장) 부품에 대한 수요 급증으로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8인치 웨이퍼가 다품종 소량생산에 보다 적합하기 때문에 DB하이텍과 같은 중소형 파운드리 업체들 실적이 오르고 있다"며 "DB하이텍은 공장 증설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TSMC가 곧바로 8인치 위탁생산 체제에 대한 설비투자를 진행해도 공급은 2~3년 후에나 가능하다. 당분간 공급과잉 우려에 대한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이에 따라 DB하이텍이 올 하반기 반도체 판매 가격을 높일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특히 DB하이텍은 글로벌 고객사가 100곳이 넘어 미·중 간 무역전쟁으로 인한 실적 둔화 리스크도 낮은 편이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8인치 위탁생산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면서 DB하이텍이 높은 수준의 수익성을 유지할 것"이라며 "공급 부족 현상도 당분간 지속돼 내년에 실적이 더 오를 수 있다"고 밝혔다.
DB하이텍 주가의 발목을 잡았던 재무건전성도 개선되고 있다. 작년 3월 말 175.5%에 달했던 부채비율은 지난 3월 말 116.8%로 낮아졌다.
실적 개선, 주요 투자자 순매수, 부채비율 하락이라는 3대 호재에 이 종목 주가는 이달 들어 지난 22일까지 21.8%나 올랐다. 문제는 이 같은 주가 급등에 따라 올해 예상 실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도 덩달아 상승했다는 것이다. 올해 PER는 9.4배로 코스피
증권사의 한 연구원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삼성전자보다 저평가된 상태였는데 두 종목의 주가가 정반대로 움직이며 DB하이텍 주가가 싸다고 보기 힘든 구간에 진입했다"고 전했다.
[문일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