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대란 下 ◆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인선을 둘러싼 잡음이 청와대 인사 개입 논란으로 확대되면서 1년째 비워뒀던 CIO 자리를 채우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여기에 최근에는 CIO를 제외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임원 8명 중 4명이 사표를 냈고, 뉴욕사무소장까지 사의를 표시해 조직 와해는 물론이고 당장 국민의 노후자금 관리는 제대로 되는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국민연금 이사장을 지냈던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한 인사권은 국민연금 이사장이 갖고 있고 인사 검증 기준은 전문성을 최우선시해야 하는데 이게 둘 다 지켜지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국민연금 CIO 임명권은 보건복지부에 속해 있었으나 2010년 전광우 전 이사장 재임기에 이를 국민연금 이사장이 임명하는 형태로 바꿨다.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인사를 스크린할 수는 있지만 결정권은 확실히 연금 이사장이 갖고 있어야만 독립적인 기금 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전 전 이사장은 "훌륭한 인재가 있다면 외국인이라도 써야 할 판인데 CIO 자리에 공직자 검증절차의 잣대를 똑같이 적용하는 건 무리"라고 조언했다.
지난해 7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의를 표명했던 강면욱 전 기금운용본부장(7대 CIO)은 "8대 CIO를 뽑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는 현 상황이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라며 "서류전형에서 통과한 인사를 어떤 절차로든 재검증해 낙마시키는 것은 인선 프로세스상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2013년부터 2년간 국민연금 이사장을 맡았던 최광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과거에는 청와대나 보건복지부가 인사개입은커녕 국민연금에 100% 독립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일했는데 최근 CIO 인사 개입 등은 이해할 수 없다"며 "국민연금 이사장에게 전권을 맡기고 외부 입김은 전면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8~2009년 국민연금 이사장을 지냈던 박해춘 전 이사장도 "국민연금 CIO는 630조원이라는 거대한 기금을 운용하는 실무책임자인데 여기에 필요한 전문성을 가장 우선시해서 인선해야 한다"며 "이 자리를 정책적 수단이나 기업을 압박하는 방법 등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야 하는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차라리 이번 CIO 인사 개입건을 좋은 기회로 삼고 정치적으로 외풍을 타지 않는 조직이 될 수 있도록 변모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전 전 이사장은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선제 조건은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전문성·책임성, 이 세 가지"라며 "이게 미리 확보돼야 책임경영을 통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민의 노후자금의 수익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통해 주주권 행사가 정치적이나 정책적으로 악용된다면 연금 수익률이 악화돼 자충수를 두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 전 이사장은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기업의 배당성향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늘고 있지만 국민연금은 초장기적인 투자자 입장에서 기업의 단기 배당보다는 중장기적 성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전 이사장도 "전문성과 독립성이 핵심"이라며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많은 나라들이 기금운용을 완벽하게 정부로부터 독립하고 있는데 이게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만 도입한다면 연금사회주의로 가게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최 전 이사장은 "이번 CIO 인선 잡음이나 대한항공에 대한 복지부 장관 개입 등을 보면 과연 앞으로 국민연금이 독립성을 갖고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수 있을지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박 전 이사장은 "스튜어드십 코드는 정치나 정책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많아 도입하면 득보다는 실이 크다고 본다"며 "때문에 꼭 도입해야 한다면 의결권 행사의 요건, 방법, 규모 등을 엄격히 통제·관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
강면욱 전 기금운용본부장은 "기금운용본부가 독립된 조직으로 떨어져나가는 게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라며 "현 구조하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외부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조직 분리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예경 기자 / 유준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