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튜어드십코드 3大쟁점 ◆
지난 16일 공항에서 막 돌아온 정구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인지컨트롤스그룹 회장)은 가슴속 깊이 맺힌 것을 토해내는 듯한 말투였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공청회 소식을 헝가리에서 전해들었다는 그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제가 창업해서 지금까지 40년간 부품회사 경영만 했는데도 뭐 하나 투자하려면 이렇게 몇 달 몇 주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관투자가들이 주주총회 때 잠깐 회사 주총 안건을 들여다보고 회사 방향을 정한다고요? 그렇게 해서 회사가 잘된다면 그야말로 경영의 신이겠지요."
73세인 정 회장이 1978년 자동차 부품 공장을 인수해 시작한 사업이 오늘날 매출 1조원이 넘는 인지컨트롤스그룹이 됐다. 자동차 부품에서 시작한 회사는 디스플레이 부품까지 사업 영역이 확대되면서 지금은 전 세계 15개국, 국내에만도 17개 사업장을 가진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그중 2개 회사는 코스닥에, 1개는 코스피에 상장시키기도 했다. 지난 40년간 자동차산업은 많은 변화를 겪었고 이제는 전기차로 넘어가는 국면이다. '멈춰 서는 것은 곧 죽는 것'이라고 여기는 그는 지난주에도 전기차 부품 관련 신규 투자를 단행하러 헝가리에 다녀왔다. 정 회장은 "현지 공장들과 약속한 게 오후 4시인데 3시부터 가서 질문 예행연습을 하고 들어갔다"며 "세세한 공정마다 품질 문제는 없는지, 향후 리스크는 없는지 몇 번을 점검해봤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연금에서 상장회사에 의결권을 분석하는 조직이 9명이라고 들었는데 지금까지 그중 한 명도 만나본 적이 없다"며 "기업인들은 10원짜리 하나 투자하는데도 이렇게 낱낱이 점검하는데 국민의 노후자금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국민연금은 기업의 미래를 생각해본 적이나 있느냐"고 절규했다.
17일 보건복지부는 서울 여의도에서 국민 노후자금 635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방안을 공개했다. 스튜어드십코드란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가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주주활동 등 수탁자 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하도록 하는 행동지침이다.
도입 방안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경영 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주주권부터 우선 도입한다. △배당 관련 주주활동 개선 △의결권행사 사전 공시 △주주대표 소송 근거 마련 △손해배상 소송 요건 명문화 작업 등이 주요 골자다. 경영 참여 주주권은 제반 여건이 구비된 후 도입 여부를 재검토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각계 의견수렴 등을 거쳐 26일 최종안을 의결할 방침이다.
국민연금은 또 독립적이고 투명한 주주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기존에 있는 의결권행사위원회를 확대 개편한 '수탁자책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 위원회는 앞으로 기금운용본부의 주주활동을 점검하는 역할을 한다.
정구용 회장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오너의 전횡을 막는 주주권 행사가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 회장은 "상장사협의회에도 이제 너무 힘들다며 상장폐지하고 싶다는 경영진이 많지만 현실적으로 상장폐지는 불가능한 대안"이라면서 "창업주들이 회사를 상장시켜 주주들과 함께 회사를 키우려던 그 마음마저 꺾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관투자가들이 미래 자동차산업은 어떻게 되는 건지, 이 회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하는 건지에 관심을 갖고 투자해준다면 정말 더 바랄 게 없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오늘도 경영에 대한 즐거운 기대보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대한민국의 1
[한예경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