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 열린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국회 청문회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강남권의 한 재건축 조합이 제출한 정비계획안에 대해 도계위원 한 명이 강남·북 형평성을 강하게 문제 삼은 것이다.
도계위는 도시계획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자문하기 위해 민관 전문가들로 구성한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공무원에게 부족할 수 있는 특정 분야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설치됐지만 실제 도계위에서는 정치 프레임이 곳곳에서 작용한다. 교수가 주류를 이루는 외부 그룹은 다양한 관점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의견은 시장의 정치 철학적 관점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기 일쑤다. 매일경제신문이 최근 서울시에 정보 공개를 청구해 열람한 작년 2월 도계위 의사록에 따르면 당시 회의에서 또 다른 도계위원이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했으면 동 간 간격뿐만 아니라 높이 등에 대해서도 규제를 완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0일 싱가포르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시 도계위에 대해 "전문성을 훨씬 강화하겠다. 혁명적으로 바꿀 생각"이라고 밝히면서 도계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도계위는 이름 그대로 도시의 계획적인 관리·운영을 위해 도시 개발 전반을 심의·자문하는 역할을 한다. 국토교통부의 중앙도시계획위원회뿐만 아니라 광역·지방단체별로도 도계위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2030서울플랜'처럼 10년 이상을 내다보고 큰 그림을 그리는 도시기본계획부터 여의도·용산 등 특정 지역 통합개발계획(마스터플랜)과 지구단위계획 수립, 재개발·재건축정비구역 수립과 해제 등 중요 역할을 한다. 서울 한강변 아파트 35층 층고 규제의 근거가 된 '한강변관리기본계획'도 도계위에서 최종 결정됐다.
현행 도시계획법상 광역단체 도계위는 25인 이상 30인 이내로 구성하도록 규정돼 있다. 현재 서울시 도계위원은 29명이다. 서울시 행정2부시장을 비롯해 서울시 공무원 4명, 구청장 1명, 시의원 5명, 외부 민간위원 19명으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구청장 1명과 시의원 5명 등 6명을 제외한 서울시 공무원과 외부 민간위원 등 23명(79.3%)은 서울시장이 임명하는 구조다. 외부 민간위원은 대한국토학회나 조경학회 등 주요 전문학회 전·현직 회장들을 주축으로 한 외부추천위원회가 3배수 정도를 서울시에 추천하면 최종적으로 서울시와 서울시장이 고른다. 도계위 구성에서 서울시장의 영향력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기본 2년 임기에 1회 연임만 가능한 외부 민간위원 임기도 구조적으로 도계위 독립성을 낮출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연임하기 위해선 서울시에 어느 정도 '코드 맞추기'를 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 전임 도계위원은 "연임이 사실상 당연한 구조로 운영되지만 서울시 의견에 강하게 반대하다가 2년 만에 임기를 그만둔 위원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퇴직한 한 서울시 공무원 출신 A씨는 "어떨 때는 외부 위원 등이 '박원순'보다 더 '박원순' 같은 아이디어를 던진다"며 "아파트 한 동을 문화유산으로 남기는 것도 외부 위원이 제안해 오히려 서울시가 받아들인 것"이라고 털어놨다.
심의 수요자 입장에선 실제 건축 여건과 무관하게 서울시의 정치적 판단과 위원들 '코드 맞추기'에 따라 의사결정이 병목되면서 속이 타들어가게 돼 있다.
집값 안정과 세입자 보호 등을 이유로 재건축 과정을 늦추는 서울시 방향이 간접적으로 회의록에서 드러난 셈이다.
외부 민간 도계위원 직업 분포에 쏠림이 심각해 현장의 실정을 잘 모른다는 비판도 크다. 현재 19명 가운데 대학교수가 12명(63.2%)에 이른다. 연구원까지 포함하면 16명(84.2%)이다. 이론만 빠삭할 뿐 실무적 접근은 다소 미흡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전문성보다 독립성 확보가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공공재인 방송 전파와 통신에 대한 인허가 등 중요 의사 결정을 내리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벤치마킹 사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방통위원은 5명인데 이 가운데 대통령이 2명, 국회가 3명을 각각 임명한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국회 몫 가운데 2명은 야당이 추천하는 구조다. 도계위 민간위원도 서울시장뿐만 아니라 서울시의회 여야에서 직접적 추천 권한을 나누는 방식을 검토할 만하다.
서울시의 도계위 개혁은 아직 시장 입에서 말만 흘러나왔을 뿐 구체화된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실무자 선에서는 도계위 구성 자체를 바꾸기보다는 시 산하 도시
[최재원 기자 / 용환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