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번 사고는 해외주식 거래 특성상 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기존의 거래 시스템의 문제점을 알고도 '쉬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예견된 사고였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또한 금융당국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으로 문제 발생에 대해 사전 관리를 허술하게 했다는 비난도 피하기 어려울 듯 보인다.
◆ 이번엔 해외 주식 사고…'예견된 사고' 지적도
↑ 유진투자증권 |
유진투자증권의 해외 매매 사고를 두고 증권업계에서는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고 입을 모은다.
자본시장법 제61조에 따르면 국내 개인 투자자가 해외 주식에 투자하려면 집중예탁 의무에 따라 예탁원을 통해야만 매매할 수 있다. 그러나 해외 주식 거래의 경우 시장이 최근들어 활성화되면서 제대로 된 전산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게 이번 사태의 화근이 됐다.
국내 증권거래 시스템상 해외 주식의 병합이나 분할로 주식 수가 조정될 경우 미국 예탁결제원에서 자동으로 한국 예탁결제원의 계좌 명부에 변경 내용이 반영된다. 예탁원은 해당 내용을 개별 증권사에 전달한다. 이때 완전 전산화를 통해 권리 변화가 자동으로 반영되는 '자동송·신 시스템(Computer to Computer Facilities, 이하 CCF)' 방식과 파일을 업로드해 증권사에서 직접 확인 후 반영하는 '예탁결제원의 인터넷 기반 통합업무시스템(이하 SAFE)' 방식으로 내용을 고지한다. 후자의 경우 수동으로 진행하는 데다 개별 증권사 내에서 시기를 조정해 수정 조작이 들어가다 보니 자동화 시스템보다 인적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조사결과 대부분의 증권사에서는 바로 전산으로 주식 변경 내용이 반영되는 CCF 방식이 아닌 일정 부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SAFE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해외 주식 거래에서 CCF 방식을 도입한 증권사는 일부 대형 증권사(NH투자증권·미래에셋대우·삼성증권 등) 정도다. 그러나 대다수의 중·소형 증권사에서는 해외 주식 거래량이 많지도 않은 데다 CCF 도입에 많은 비용과 유지비가 들기 때문에 SAFE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고가 '예견된 인재(人災)'라는 지적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진투자증권은 해외 주식 매매에서 일부 수작업이 포함되는 SAFE 방식을 취한다. 수작으로 전문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이 늦어지면서 전산 반영 또한 지연된 것이다.
유진투자증권 측은 이번 사고에 대해 "미국 예탁원에서 주식병합 관련 전문을 당일 통보했고 늦게 취합한 내용을 담당 직원이 제때 반영하지 못해 사고가 났다"고 해명했다.
회사는 뒤늦게 오류를 파악한 후 매도 제한조치를 취했고 손실이 난 해당 499주를 시장에서 사서 결제했다고 덧붙였다. 유령주식 매도를 한 A씨에게 초과 수익을 돌려달라고 내용증명을 보냈으나 A씨가 이를 거부하면서 문제가 커졌다는 입장이다.
◆'증시후진국' 비난 속출…여전히 허점 투성이 '관리 체계'
이번 사고는 지난 4월 삼성증권 사태처럼 규모는 크지 않지만 실제로는 없는 주식이 거래됐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금융당국이 부실한 증권 거래 시스템에 대해서 재정비하겠다며 호언장담했으나 비슷한 사건이 또다시 터지면서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특히 지난 5월 금융감독원은 국내 주식매매 거래 일부를 수작업으로 처리하는 부분을 점검하고 전산시스템 방식을 도입안을 내놨지만 이번 사례와 같은 해외 주식 거래시스템은 제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금감원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게다가 금감원은 이번 사고에 대해 사전에 인지하고도 방관하다 분쟁 사실이 밖으로 드러나자 서둘러 진상 파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관계자는 "민원 접수 이후 해당 사실이 드러나면서 내부에서 사실 여부에 대한 진상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국내 주식은 예탁원과 증권사의 실시간 확인 방식으로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나 해외주식의 경우 현지 예탁원과 국내 예탁원 간에 전문을 주고받고 이를 개별 증권사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시차가 발생하는 점 때문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파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해외 주식 거래 통보와 관리는 전적으로 한국 예탁결제원에서 독점적으로 취합하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과 근본 시스템을 사전에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고 언급했다.
이번 사태는 예탁원의 집중 거래 시스템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해외주식 병합 혹은 분할이 있더라도 거래정지 없이 실시간 반영돼 거래가 유지된다. 반면 국내는 해외 변동 사항에 대해 예탁결제원 독점적으로 집중 관리를 하고 변경 내용을 각 증권사에 통보하는 형식이다. 통상적으로 장부 계좌에 변경된 정보 값과 결괏값을 반영하는데 최소 2일에서 5일 가까이 시간이 소요돼 거래 정지가 불가피하다. 문제는 이 기간 동안 주가가 급락해 투자자들의 손실 위험의 소지도 커진다.
때문에 삼성증권이나 NH투자증권 등 개별 증권사에서는 매매거래정지 기간에 고객이 오프라인으로 매매거래를 신청하면 추후 온라인 수수료를 적용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유진투자증권의 경우도 병합일 며칠 전부터 장기간 거래 정지 기간을 둔다면 여러 가지 고객 불편 사항과 투자 손실의 부담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거래 정지일을 늦추다 보니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예탁원 측은 CCF 등 해외 주식 권리 변동 사항에 대해 자동화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고 SAFE 방식을 요청하는 증권사들에게는 사전에 수차례 예비 통지를 알리는 등 최대 조치를 다 했다고 반박했다.
이번 해외 유령주식 사고에 대해서도 "주식 병합에 대한 내용을 병합일 9일 전부터 15일, 22일, 24일 세차례 가까이 통보했다"고 말했다.
연이은 주식 매매 사고에 대해 관계 당국이 사건의 내막에 대해 책임 공방을 벌이는 동안 여론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문제점을 안고 있는 시스템과 제도에 대해 암묵적으로 회피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증권사들의 후진적 주식거래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비난이 빗발친다.
또한 삼성증권, 골드만삭스증권에 이어 유진투자증권까지 유령주식이 매매됐다는 점에서 '공매도' 제도 폐지·개정도 함께 논의 중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공매도'를 검색 시 1800여 건이 넘는 청원글이 올라와 있다. 이 중 대부분은 공매도 폐지, 공매도 제도 개편을 요구하는 게 대다수다.
금융투자업계 또다른 관계
[디지털뉴스국 김규리 기자 / 김제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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