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찍힌 인류 최초의 발자국.
그 주인공은 1969년 아폴로 왕복선을 타고 우주로 날아간 닐 암스트롱이다. 당시 그가 착용한 신발은 실리콘 재질로 만들어졌는데 다름 아닌 GE실리콘이 만든 제품이었다. 이 역사적이고도 세계적인 기업이 마침내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다.
1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KCC와 원익그룹, 임석정 회장이 이끄는 SJL파트너스 컨소시엄은 12일 세계 3대 실리콘 기업인 미국 모멘티브를 인수하기로 모멘티브 최대주주인 아폴로사모펀드(PE) 측과 사실상 합의했다. 매각 금액은 30억달러(약 3조3840억원)로 최종 확정됐다. 이는 국내 사모펀드 역사상 최대 규모 해외기업 인수·합병(M&A)이다. 펀드와 국내 기업이 합작한 최초의 해외 M&A이기도 하다. KCC 컨소시엄과 모멘티브 측은 이르면 13일 계약서에 공식 서명할 방침이다.
모멘티브의 전신은 GE실리콘이다. 최대주주인 미국 사모펀드 아폴로PE가 2006년 GE실리콘을 사들이면서 사명이 모멘티브로 바뀌었다. 모멘티브는 미국 다우코닝·독일 바커와 함께 '세계 3대 실리콘 기업'으로 통한다. 다우코닝이 1위, 모멘티브가 2위, 바커가 3위다.
실리콘 사업이 주력인 모멘티브는 실리콘보다는 규모가 작은 세라믹·석영 분야에서도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모멘티브 최대주주는 아폴로·오크트리·DE SHAW·펜트워터 등 4곳의 미국계 사모펀드 운용사들로 지분율은 총 75%다. 이 중 아폴로가 40%를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25% 지분은 미국 델라웨어 장외주식시장(OTC)에서 거래된다. KCC 컨소시엄은 PE 보유지분과 OTC에서 거래되는 주식을 모두 사들여 100% 지분을 확보할 방침이다. 3사 투자비율은 SJL이 50%, KCC 45%, 원익 5%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KCC 컨소시엄의 모멘티브 인수는 국경을 넘어선 빅딜이라는 의미 외에도 국내 핵심 산업인 반도체 및 원천 소재 시장에 더 큰 활력을 불어 넣어줄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맞서 전 세계 반도체 핵심 부품 주도권을 한국이 보다 확고히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번 M&A를 통해 전 세계 실리콘 시장 10위권 밖이었던 KCC는 단숨에 '넘버2' 실리콘 회사로 발돋움한다. 현재 연 2000억원 규모인 KCC의 실리콘 매출은 모멘티브 인수를 통해 2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건축자재 전문기업인 KCC가 '실리콘'이라는 신성장 동력을 본격적으로 장착하게 된 셈이다.
이번 딜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모멘티브 인수로 KCC는 넘버2 브랜드는 물론 수천 건의 원천기술까지 확보하게 됐고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가동 중인 모멘티브 생산라인까지 적극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원익그룹도 이번 M&A를 통해 글로벌 세라믹·규소 시장 최강자로 올라선다. KCC 컨소시엄과 아폴로 측은 모멘티브 인수 후 즉각적으로 이 회사를 실리콘과 세라믹·석영 두 개의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현재 모멘티브 실리콘 사업부는 뉴욕 워터포드에, 세라믹·석영 사업부는 오하이오 시스터반리에 위치해 있다. 모멘티브 실리콘 법인은 KCC와 SJL이 각각 50%씩 지분을 나눠 갖고, 세라믹·석영 법인은 SJL과 원익이 50%씩 보유할 방침이다. KCC의 실리콘 사업부를 따로 분리해 모멘티브 실리콘 법인과 통합하거나 그 산하에 두는 방안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맥락에서 원익의 세라믹·석영 사업도 분리해 모멘티브 세라믹·석영 법인과 통합하는 방안 등이 추진될 전망이다. 국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수조 원대 크로스보더 딜이 성사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임석정 SJL파트너스 회장의 역할이 컸다. 당초 이번 딜은 모멘티브의 석영·세라믹 사업군에 관심이 있던 이용한 원익 회장이 임 회장에게 공동인수를 제
모멘티브는 원래 중국계 화학기업에 넘어갈 뻔 했지만 결국 한국 기업의 품에 안기게 됐다.
[남기현 기자 / 고민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