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미국 월가에서 100년 넘게 영업해오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하루아침에 쓰러진 후 글로벌 금융시장은 빠른 속도로 변했다. 10년이 지난 2018년 현재 미국의 거시경제는 완전고용에, 나스닥도 이달 들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이 견조하게 성장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아쉬운 대목이 많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리 자본시장에 '3대 트라우마'가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채권시장에선 '외국인 트라우마'가 여전하다. 외국인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이들이 빠져나가면 또 언제 흔들릴지 모를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주식시장의 '저평가 트라우마'도 10년째 그대로다. 코스피는 10년간 한 해도 연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이 10배를 넘은 적이 없다. 펀드시장에선 해외 주식형 펀드의 '(설정액) 반 토막 트라우마'가 발목을 잡고 있다.
◆ ① 채권시장 외국인 트라우마
일시에 빠져나갈땐 '흔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고 있는 데다 외국인들의 공격적인 매수로 채권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채권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채권금리가 떨어졌으면 그만큼 채권가격은 상승한다.
외국인들은 원화 채권을 계속 사들이며 역대 최대 보유액을 계속해서 경신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 간 금리 역전 상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원화채를 사들이는 모습이다.
1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외국인의 원화 채권 순매수액은 약 42조원에 달한다. 지금까지 추세로 봤을 때 올해는 외국인 연간 채권 순매수액이 2010년 이후 처음으로 50조원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 8월 말 기준 외국인의 원화채 보유액은 114조원이다. 채권 전체 잔액의 약 5.9%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다른 이머징마켓에서는 금융시장 불안으로 자금이 빠져나갔지만 한국은 오히려 자금이 몰려드는 셈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이 빠르게 회복했다는 점도 외국인이 원화 자산을 안전자산으로 평가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외국인들이 한국 채권을 매력적으로 보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외국인들의 영향력이 크게 높아진 반면 우리 채권시장의 체력은 아직 미진한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외국인 보유 자금이 일거에 빠져나가면 채권시장이 큰 폭으로 출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환율 리스크가 첫째로 지목된다.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외국인도 원화 채권에 매력을 잃고 매도에 나설 수 있다. 이 경우 외환시장 변동성은 더욱 커진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중앙은행과 국부펀드는 리스크에 매우 민감한 자금으로 봐야 한다. 손실이 날 경우 가장 먼저 빠져나갈 것"이라며 "원화값이 떨어지는 경우도 문제다. 가뜩이나 원화값이 떨어지는데 외국인이 보유한 채권 114조원 중 10조~20조원이 빠져나가면 거의 외환위기 수준의 충격이 올 것"이라고 밝혔다.
◆ ② 주식시장 저평가 트라우마
실적 좋아져도 주가 부진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코스피는 2000선은 넘었다. 그러나 상장사들의 이익이 괄목할 정도로 늘어난 지금도 9월 13일 기준 코스피는 2286.23으로 여전히 박스피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금융위기 직전 2000까지 바라봤던 코스피가 10년이 지나도록 2000대 초반에 머물고 있는 이유로는 한국 상장사들에 대한 가치평가가 지나치게 인색하다는 점이 손꼽힌다. 2008년 17.35배였던 코스피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018년엔 8.67배로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올해 미국 증시 PER가 17.6배, 유럽 증시가 14.3배, 일본 증시가 13.9배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 상장기업들은 제값을 받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상장기업들은 매출과 영업이익은 크게 늘었다. 2008년 2분기에 코스피 상장기업의 매출 총합은 246조원이었는데 올해 2분기는 335조원으로 36% 증가했다. 이익은 더욱 개선됐다. 2분기 영업이익의 합은 10년 전 23조원에서 올해 34조원으로 47% 늘어났다.
코스피가 실적에 비해 주가 상승세가 더딘 이유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의 성장성과 매력도에 비해 낮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상장지주펀드(ETF)나 패시브펀드 등으로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며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지분율은 10년 새 30.12%에서 최근엔 36.31%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여전히 한국 시장을 신흥시장의 일부로 보고 있다.
윤희도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들어 남북관계 긴장 해소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으로 충분히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조건은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반기업적 규제와 정책으로 외국인은 한국 시장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 ③ 해외펀드 반토막 트라우마
10년전 악몽에 설정액↓
글로벌 금융위기는 2000년대 중반 불었던 해외 주식형 공모펀드 열풍에 찬물을 끼얹었다. 예상치 않은 위기에 글로벌 증시 전역이 '패닉' 상태에 빠지면서 원금이 반 토막 나는 경우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은행과 증권사의 프라이빗뱅커(PB) 등 재테크 전문가들은 "10년 전 악몽에 아직도 공모펀드라면 손사래를 치는 투자자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펀드시장 부침으로 손실을 본 트라우마가 강렬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매일경제신문이 최근 10년간 해외 주식형 펀드 수익률을 들여다본 결과 글로벌 금융위기를 참고 버틴 투자자들은 최대 원금의 2배 이상 수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미국 주식형 펀드의 최근 10년 수익률은 117.35%로 집계됐다. 최근 5년과 3년 수익률이 각각 75.56%, 33.44%라는 점을 감안하면 꾸준히 흐름이 좋다. 인도 역시 최근 10년간 펀드 수익률이 좋았던 투자처로 꼽혔다. 인도 주식형 펀드는 최근 10년간 83.84% 수익률을 보였는데, 5년 기준으로는 92.18%에 달하는 수익률을 자랑한다.
해외 주식형 펀드는 최근 10년간 39.54%의 평균 누적 수익률을 보였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휩쓸고 간 자리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2008년 말 해외 주식형 공모펀드 설정액은 54조원에 육박했지만 4년 만에 반 토막이 났다.
하지만 재테크 전문가들은 해외 주식형 펀드시장이 10년 전과 달라졌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인식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정희영 기자 / 김제림 기자 / 유준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