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캐피털그룹이 작년에 삼성전자 주요 주주 자리에서 물러난 데 이어 최근 현대차 지분을 줄인 것을 감안하면 이 같은 움직임은 SK그룹이 최근 속도를 내고 있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과 관련이 있다는 의견이 증권가에서 나온다. SK그룹이 SK텔레콤을 중간지주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SK하이닉스 몸값이 올라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26일 금융감독원과 증권업계에 따르면 더캐피털그룹은 지난 6일 SK하이닉스 지분이 기존 5.05%에서 6.07%로 1.02%포인트 증가했다고 공시했다.
이 공시 직전 SK하이닉스 주요 주주는 SK텔레콤(20.07%), 국민연금(9.1%), 블랙록(5.08%), 더캐피털그룹(5.05%) 등이었다. 더캐피털그룹이 이 주식을 추가로 담으면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제치고 3대 주주로 올라선 것이다.
더캐피털그룹도 블랙록과 같은 미국계 자산운용사로 운용 자산 규모가 1조6000억달러에 달해 글로벌 7대 자산운용사에 속한다.
국내 주식에 관심이 많아 실적이 우량한 유가증권시장(코스피) 대형주에 꾸준히 투자해 왔다. 이날 기준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40곳을 대상으로 주요 주주 명단을 확인해보니 5% 이상 지분 기준으로 SK하이닉스를 비롯해 현대차, 하나금융지주, LG유플러스 주요 주주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업계에선 더캐피털그룹이 삼성전자 지분도 일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작년 5월 26일 삼성전자 지분 5.17%를 확보했다고 공시한 이후 같은 해 9월 지분을 4.65%로 줄였다고 공시하며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공시 규정상 5% 이상만 공시 의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대차에 대해선 최근 지분을 팔아 지난달 지분율이 7% 아래로 내려갔다고 공시했다. 시총 상위 종목 기준으로 더캐피털그룹은 SK하이닉스 지분을 늘리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와 현대차 지분은 줄인 셈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호황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 들어 나란히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고 있는데, 더캐피털은 SK하이닉스를 집중적으로 매집하고 있다"며 "정부가 삼성그룹 금융 계열사의 전자 지분 매각을 압박하고 있는 반면 SK하이닉스는 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따라 이 주식 지분을 사들여야 하는 상황이라 수급 차원에서 정반대 입장"이라고 말했다.
증권가에선 SK그룹이 SK텔레콤을 중간지주사 형태로 놓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곧 추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SK하이닉스를 축으로 본 SK그룹 지배구조는 '최태원 회장→SK→SK텔레콤→SK하이닉스'다. 지주사 SK 기준으로 SK하이닉스는 손자회사에 머물러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손자회사는 인수·합병(M&A)할 때 인수 대상 기업 지분 100%를 소유해야 한다. 투자 부담이 너무 커 사실상 M&A를 하기 힘든 구조다. SK하이닉스는 작년 영업이익 13조7213억원을 올린 데 이어 올해 22조원 넘는 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SK그룹의 '캐시카우(현금창출원)'지만 규제에 묶여 성장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향후 SK텔레콤을 물적분할해 중간지주사(투자지주사)와 사업회사(통신회사)로 분할하고, 중간지주사 밑에 사업회사와 SK하이닉스, SK플래닛, SK브로드밴드 등을 두는 구조로 개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가 손자회사에서 자회사로 격상하면 M&A 규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SK텔레콤은 곧 중간지주사로 전환될 것"이라며 "이 같은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SK하이닉스 등 SK텔레콤 자회사들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K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에 최소 5조원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다소 신중한 반응이다. 최근 입법예고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신규 지주사는 자회사 지분율을 30% 이상(상장사 기준) 확보해야 한다. 현재 SK텔레콤은 SK하이닉스 지분 20.1%를 보유 중이다. 향후 중간지주사가 SK하이닉스 지분율을 9.9%포인트 늘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날 기준 SK텔레콤으로선 5조1000억원이라는 비용 부담이 생긴다. 물론 SK하이닉스는 그만큼 대기 매수세가 기대된다. 반도체 고점 논란에도 SK하이닉스 지분 가치가 뛰면서 외국인은 이달 들어 26일까지 SK하이닉스를 1928억원어치 순매수 중이다. 순매수 규모로 코스피 중 단연 1위다.
반면 삼성전자는 지배구조 개편에 따른 '오버행(대량 대기 매물)'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는 각종 금융 관련 규제를 들어 삼성화재·삼성생명 등 금융 계열사가 삼성전자 지분을 축소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이달 들어 26일까지 삼성전자 주가는 0.5% 오른 반면 SK하이닉스는 4% 반등하는 데 성공했다.
[문일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