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동안 서울 포함 수도권에서 재개발·재건축 시공사 선정에 공을 들여왔던 건설사들에게 올해는 꽤나 호된 한 해였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롯데건설 등이 꽤나 구체적인 금품살포 혐의로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서울지방경찰청의 정조준을 받고 수사선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회사 이미지에 가장 큰 타격인 본사 압수수색을 받은 건설사도 있다.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에 따르면 조합원에 금품을 준 혐의 등이 걸리면 시공권 계약을 한 건설사라도 수주비리로 실형을 받고 시공권을 박탈당하는 등의 처분이 강화됐다. 하지만 시행령이 효력을 발휘하는 올해 10월 전에 시공권을 획득한 경우 소급적용이 되지 않는다. 이에 일부 재건축 조합이 민사소송을 통한 시공사 변경 시도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져 소송 착수 여부도 관심사항으로 떠오르고 있다.
◆도정법 시행령 개정안 10월 중순부터 본격 시행
지난 7월 초 국토부는 재건축 시공권 수주 시 금품을 제공하는 등 수주비리가 밝혀질 경우 해당 시공권을 박탈하거나 과징금 부과, 입찰 참가 제한 등의 처분을 강화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발표했다.
10월 13일부터 본격 시행된 이 법안에 따르면 정비사업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조합 등에 금품을 주고 받을 경우 기존의 형사처벌(5000만원 이하 벌금)뿐만 아니라, 해당 현장의 시공권을 박탈하거나 공사비의 100분의 20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최대 2년간 입찰 참가 자격이 제한한다.
기존 홍보대행사 등 용역업체를 앞세워 금품 등을 제공한 뒤 문제가 발생하면 꼬리자르기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던 건설업체도 앞으로는 직접 제공한 것과 동일한 기준으로 처벌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앞서 지난 3월 국토부는 지난해 실시한 강남권 5개 재건축 조합에 대한 합동점검 결과 총 76건의 부적격 사례를 적발해 수사의뢰, 시정명령 및 행정지도 등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를 수사해오던 서울지방경찰청은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현대건설과 롯데건설, 대우건설의 임직원과 홍보대행사 관계자, 조합원 등 334명을 불구속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지난 11일 밝힌 바 있다.
↑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반포주공 1단지 1·2·4주구 재건축조합 시공사 선정 총회 모습 [사진 매경DB] |
금품살포가 현대건설의 재건축 총괄 부서의 관리 아래 홍보대행 직원을 통해 이뤄진 정황도 포착됐다. 이에 경찰의 수사선상에는 현대건설 정수현 전 사장과 재건축 사업 담당 간부까지 올랐다. 현재 현대건설을 이끄는 박동욱 현대건설 사장 역시 조사 대상인 재건축 수주 당시 재무 담당 부사장이라 책임이 없지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롯데건설은 신반포15차와 잠실 미성·크로바(1300여 세대) 재건축 수주전에서 조합원에게 2억원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롯데건설 역시 지난 8월 본사 서버와 주택사업본부 등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지난 1월 대우건설 본사와 강남지사 등 3곳이 압수수색을 당한 대우건설은 신반포15차 수주전 당시 홍보대행사를 통해 조합 측에 현금 1억5000만원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외에도 현대건설과 롯데건설 임직원들은 홍보대행사로부터 금품을 역으로 받은 혐의도 있다.
◆끊이지 않는 수주비리에 일부 조합은 시공권 해지 움직임도
경찰 수사 결과, 현대건설은 1억1000만원, 롯데건설은 2억원, 대우건설은 2억3000만원 가량의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건설사들이 금품 살포 과정에서 수십억 원 대의 홍보예산을 책정한 정황이 있어 금품 혐의 규모는 향후 더 커질 수 있다.
이들 건설사들이 이런 과도한 예산을 책정해가면서 시공권을 따내려했던 이유는 우선 재건축 사업장, 특히 강남권은 사업비가 높아 시공권만 따내면 큰 이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권에 자사의 브랜드를 심을 수 있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실제 현대건설이 수주한 반포주공1단지의 경우 총 사업비 10조원에, 공사비만 2조 6000억원에 달해 수주전 당시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정비사업장'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몇 년 전 해외사업을 활발히 벌이던 대형건설사들이 해당 부실을 국내 주택사업 이익으로 막기위해서가 아니었겠냐는 지적도 있다. 2013년 건설사들의 해외 대규모 부실은 아직 온전히 해결되지 못했고, 이후 몇년 간 대형건설사들의 실적은 국내 주택부문이 주도하고 있다. 실제 대형건설사 합산 주택매출은 2013년 8조원에서 올해 3분기 24조원으로 3배 정도 늘어난 반면 합산 해외매출은 25조원에서 13조원으로 반토막이 난 상태다.
정부가 과열된 부동산시장을 진화하기 위해 연초부터 주택시장 관련 정책을 꾸준히 내놓자 이미 일부 건설사들은 내년 사업방향을 해외사업 수주로 튼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연말 임원인사를 통해 일명 '해외통'을 전진배치하며 사업 구조 개선에 나섰다는 평이다.
대표적으로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최영훈 전무, 임영선 상무, 진영종 상무 등이 해외 현장 출신이다. 올해 해외수주 목표를 채우지 못한 현대건설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진행 사장을 현대건설 부회장으로 승진이동시켰다. 이 역시 해외사업 강화가 목적으로 해석된다. 올해 큰 해외악재가 있었던 SK건설은 그룹 내에서 손꼽히는 해외 전문가인 안재현 SK건설 글로벌비즈대표를 신임대표로 선임했다.
회사 내부 정비에 나선 건설사들은 금품살포로 수주비리 낙인이 찍힌 현장들을 보듬는 작업 병행도 시급해보인다. 수주전이 치열했던 현장들마다 민사소송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에서는 조합원 16명이 지난 7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조합을 상대로 현대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한 총회 결의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GS건설이 시공권을 가져간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4지구(구 한신4지구) 재건축 사업은 공사비 증액 문제로 조합원 일부가 시공자 선정 무효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파구 잠실 미성·크로바아파트를 재건축하는 롯데건설은 지난 8월 말 일부 조합원이 조합을 상대로 시공자 선정 총회 결의 무효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결과를 놓고 정비사업 업계는 예정된 수순을 밟는 과정이라는 시각이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시행을 앞두고 작년 말 재건축 단지들이 무더기로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조합 측은 "부자 만들어 주겠다"며 금품을 살포하는 시공사를 선택하기에만 급급했을 뿐, 충분한 세부 사항 논의없이 본계약을 체결한 결과가 조합과 시공자간의 갈등 확산의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최근 한 공중파 시사프로그램에서는 시공자와 조합의 골이 깊어지게 만드는 대표적인 요인을 구체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공사착수 기준일 변경으로 공사비가 늘어나면서 시공자는 추가 공사비를 요청해 시공관련 이득을 챙기지만, 조합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시공자 계약 체결 시 내역입찰에 대한 꼼꼼한 확인이 필수 요건인 이유다.
한 법무법인 측은 시공자가 제대로 알리지 않는 공사비 증액의 대표적인 사유로 ▲단순 3.3㎡당 공사비 계약이나 설계변경 ▲조합원 평형변경으로 인한 변동 ▲물가변동 ▲사업기간 지연 ▲마감재 불특정 ▲대여금과 공사비 변제조건 ▲각종 금리 조건 ▲계약 해제시 시중은행 일반대출 연체금리로 대여금 반환조항 ▲발코니 확장 등이란 점을 공개하기도 했다.
2018년 말 현재 전국 1700여곳이 재건축·재개발 사업지로 남아있는 상태다. 금품살포 등 기존 도정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은 건설사는 거의 없다. 경찰은 재건축사업 비리가 결국 집값 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보고 관련 수사를 지속적으로 진행한다고 알려졌지만 개정안 시행 전 수주 물량이라 처벌 수위는 건설사들에 큰 타격을 주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공권 수주에 활발하게 참여했던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수주전에서는) 돈봉투가 사라졌다. 설명회도 공개적으로 1회로 한정됐고, (조합원) 대면 접촉은 아예 없어졌다. 상품설계에 공을 들이고 브랜드를 강조하는 방법으로 다가갈 수 밖에 없다"며 수주비리 관련 수사 진행과 강화된 도정법으로 이미 현장은 '깨끗한 수주전이 됐다'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정비사업장의 건설사와 조합간 관행이 도정법 개정에도 쉽게 사라질 것으로 보는
[디지털뉴스국 이미연 기자 enero20@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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