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이외에 스마트폰·디스플레이·가전 등 다양한 사업을 가진 삼성전자가 가장 저평가된 것으로 집계됐으며 역시 복수의 사업군을 보유한 SK이노베이션, LG생활건강, LG전자 등의 주가도 본업 가치만 겨우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25일 매일경제신문과 유진투자증권은 SOTP(Sum of the Parts·부분의 합) 평가 방식을 통해 산정한 시가총액 상위 20개사(지주사·금융사 제외)의 적정 기업가치를 897조원으로 추정했다. SOTP는 한 회사의 사업 부문별 가치를 합산한 후 여기에 타 회사 보유 지분 가치까지 더해 기업가치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복수의 사업 구조와 타 회사 보유 지분이 많은 대형 상장사 평가에 적합한 편이다.
시총 상위 20개사 기업가치가 900조원에 육박한 반면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 합계(24일 기준)는 616조3000억원에 그쳤다. 시총 규모가 기업가치 대비 68.7%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20곳 가운데 무려 90%인 18곳의 시총이 기업가치를 밑돌았다.
이번 분석에 따르면 삼성전자 기업가치는 총 413조6000억원이다. 부문별로는 반도체 사업가치가 189조4850억원에 달했다. 여기에 디스플레이 사업(26조7180억원)·가전(15조5780억원)·전자장비(하만·8조7750억원)를 합치면 240조원이 넘으면서 현재 시총(231조6000억원)을 넉넉히 넘는다. 이 방식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사업가치(79조6050억원)는 아예 주가에 반영되지도 않은 셈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시총은 기업가치의 56%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현금 창출력은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지만 시총은 24%나 급감해 이 같은 저평가가 나온 것"이라며 "주가는 실적 이외에도 정부 규제 등 외부 환경에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인 반도체 업황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크고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계열사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D램 반도체 단일 사업 구조이지만 역시 저평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시총은 기업가치의 61.9%에 그쳤다. 이들처럼 분석 대상 평균치(68.7%)에 미치지 못하는 저평가주로는 LG생활건강(61.3%), SK이노베이션(64%), LG전자(66.3%)가 손에 꼽힌다. 정유 업종으로 분류되는 SK이노베이션은 화학·윤활유·배터리 등 사업군이 다양하다. 정유와 화학 사업가치는 각각 11조8790억원, 6조6370억원으로 두 사업가치만으로 시총(16조7000억원)을 넘어선다. 증권가에선 배터리 사업의 잠재적 가치를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올해 배터리 누적 수주 잔액은 300GWh로 전년 대비 362% 증가할 전망이다. 폭스바겐 등 유럽과 미국에서 수주가 증가한 덕분이다. 이동욱 키움증권 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은 2022년 손익분기점을 넘어 규모의 경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LG생활건강은 중국 사드 악재로 주가가 부진하지만 현금 창출력과 실적은 오히려 개선되고 있다. 올 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8.1% 늘어난 2001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후'와 '숨' 등 고가 화장품 판매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장품 사업가치는 21조9520억원으로 시총(16조9000억원)보다 높다. 이에 따라 전체 사업가치 대비 시총 수준은 60%대에 머물고 있다.
최근 주가 하락이 두드러진 LG전자도 마찬가지다. 시총이 10조원대에 턱걸이하고 있지만 이 업체의 가전사업(H&A) 한 곳이 11조6350억원의 기업가치를 보유하고 있다. 적자 사업인 스마트폰을 제외하고 TV·노트북 사업(8조570억원)은 반영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증권가에선 미래 유망 사업인 자동차 전장 사업에 대한 기업가치가 주가에 반영되면 LG전자 주가가 크게 반등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변준호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국내 기업들의 주가는 미·중 무역전쟁, 경기둔화 등 각종 악재를 거의 반영한 수준"이라며 "악재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이 기업가치 회복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문일호 기자 / 박의명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