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8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은 15일 정식 공포된다. 여기에는 연기금과 공제회가 투자일임업자(자산운용사)에 의결권을 위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이 담겼는데 개정안 공포 시점을 기준으로 1개월 이후에 시행될 예정이다. 오는 3월 상장사들의 주주총회를 앞두고 민간 자산운용사들이 의결권을 위임받을 수 있도록 금융당국 차원에서의 법적 정비가 이뤄진 셈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 등 관계 기관에서는 아직 의결권 위임에 대해 명확한 방향성을 설정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7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당시 의결권 행사 위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수탁자책임위원회가 이를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6개월 가까이 구체적인 그림을 내놓지 못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23조9000억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 중 66조6000억원은 직접 운용을 통해 투자한다. 57조3000억원은 위탁 운용을 통해 투자하는데 국내 32개 자산운용사가 이를 나눠 맡는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7월 자산운용사들의 주주활동 이력을 평가해 역량 있는 곳부터 의결권을 순차적으로 위임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민간 운용사들이 도입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 무색할 정도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국내 자산운용사 24곳 중 8곳은 국민연금의 제도 도입 이후 참여가 이뤄졌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3월 주주총회에 맞춰 의결권 위임이 이뤄지기는 힘든 상황"이라며 "초안 작업을 진행 중으로 올해 상반기까지는 수탁자책임위원회 검토와 기금운용위원회 의결을 거쳐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민간 자산운용사들은 의결권 위임에 앞서 시급히 정리돼야 할 문제로 '의결권의 불통일 행사 거부'를 꼽고 있다. 국민연금이 자산운용사에 주주권 행사를 위임해도 국민연금과 다른 목소리를 낼 경우 주주권이 행사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상법 제368조의2에 따르면 국민연금과 위탁운용사가 투자한 동일 기업 주총 안건에 관한 의견이 다르면 기업은 이를 거부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기업이 의결권 불통일 행사를 거부할 경우 위임한 의결권을 거둬 기금운용본부에서 행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사실상 국민연금이 지시하는 방향대로 민간 자산운용사들이 움직이라는 이야기"라며 "관련법을 개정해 예외를 두지 않는 한
자산운용사 역시 의결권을 위임받을 준비가 안 돼 있는 사례가 많아 역량 강화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높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자산운용사마저 의결권 행사 내역과 수탁자 책임 활동 이력을 공개하지 않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유준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