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에선 외국인의 한발 빠른 중장기 매수 전략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기업들이 올해 투자 규모를 대거 축소하면서 공급과잉 문제가 예상보다 빨리 해결될 것으로 전망한다는 것이다. 달러 약세 전환에 따라 신흥국 중 가장 저평가된 국내 주식들을 사 모으는 투자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뒤따르고 있다.
25일 한국거래소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이날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순매수 1·2위는 각각 삼성전자(1조3439억원)와 SK하이닉스(7195억원)였다. 두 반도체 종목에 대한 외국인 순매수 규모가 2조634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외국인의 코스피 순매수가 2조8946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달 외국인 매수 중 71%가 반도체 두 종목에 집중된 셈이다.
이달 외국인이 반도체 '투톱'을 순매수한 금액은 2013년 10월(2조5841억원) 이후 5년3개월 만에 최대 규모다.
이 같은 반도체 수급 호조는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펀드를 중심으로 국내 증시에 자금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글로벌 펀드정보업체 EPFR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23일까지 신흥국에 유입된 자금은 94억달러에 달한다. 이 중 약 14억달러가 국내로 들어왔다. 같은 기간 미국 등 선진국에선 약 297억달러가 빠져나갔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달러 약세가 예상되고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다른 통화 자산들을 찾기 시작한 것"이라며 "신흥국 중 가장 저평가된 한국을 찾았고, 그중에서도 가장 낮은 가치평가를 받고 있는 반도체주를 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외국인들은 특히 최근 발표된 국내 반도체 기업의 '어닝쇼크'를 반도체 투자 규모와 업황이 '바닥'에 왔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국인은 최근 2거래일(24~25일) 동안 반도체 '투톱'을 9611억원어치 집중 매수했다. 지난 24일은 SK하이닉스가 올해 반도체 장비 투자 금액을 작년보다 40%가량 축소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날이다. 정창원 노무라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메모리 시황이 예상보다 빠르게 나빠지자 설비 투자가 조정되고 그만큼 반도체 업황 바닥도 빨리 오고 있다"며 "외국인은 이 같은 최악 상황일 때 주식을 사기 시작하고 반도체주는 밸류에이션도 바닥을 탈출할 것이란 기대에 매수에 나서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외 반도체 기업 동향도 우호적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미국 메모리 반도체업체 웨스턴디지털도 반도체 업황이 꺾이자 생산량을 축소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공급과잉 해소 기대감이 작용하며 24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전날보다 무려 5.73% 솟구쳤다.
그러나 장 마감 후 발표된 인텔의 작년 4분기 실적이 예상과 달리 부진하게 나온 것은 향후 변수 때문이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국내외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공급량을 축소한다는 발표를 내놓으면서 올 하반기부터 반도체 업황 회복이 기대되고 중·장기 투자하는 외국인이 최근 매수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외국인의 삼성전자 선호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달만 삼성전자에 대한 매수 강도가 SK하이닉스의 2배다. 작년만 해도 외국인은 SK하이닉스가 저평가됐다며 1조원 가까이 순매수했으나 삼성전자에 대해선 5조원 규모 순매도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D램과 낸드 분야에서 모두 글로벌 점유율 1위 업체"라며 "가격 하락세에 공급량 조절로 버틸 수 있는 1등 업체라는 메리트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반도체주 집중 매집에 힘입어 코스피도 연일 상승세를
이날 코스피는 전일보다 32.70포인트(1.52%) 오른 2177.73을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10일(2228.61) 이후 석 달 보름 만에 최고치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8139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이는 약 4개월 만에 최대다.
[문일호 기자 / 박의명 기자 / 정희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