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산업개발이 올린 주주제안 안건이 주총을 통과하게 되면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 또는 전 회장과 그의 부인인 김정수 삼양식품 사장이 동시에 삼양식품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야 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지난달 25일 서울북부지법 형사11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또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 사장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두 사람은 2008~2017년 삼양식품이 계열사로부터 납품받은 포장 박스와 식품 재료 가운데 일부를 자신들이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로부터 납품받은 것처럼 허위로 꾸며 49억원을 횡령해 개인주택 수리와 카드 대금 등에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가 적용됐다.
이번 제안이 구체적으로 전 회장만을 타깃으로 하는지, 아니면 전 회장과 함께 김 사장까지 포함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 사장은 삼양식품 최대주주인 삼양내츄럴스의 최대주주(지분율 42.2%)로 남편인 전 회장보다 지분율이 두 배 높다. 경우에 따라선 전 회장만 등기이사에서 물러나고 김 사장은 회사에 남을 가능성이 있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주주제안에 구속 혹은 집행유예 여부 차이에 대해서 심도 있게 생각한 것은 아니다"며 "윤리경영 강화 측면으로 보면 되며, 과도한 해석은 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본시장에서는 삼양식품 오너 일가 백기사였던 현대산업개발이 주주제안을 한 사실 자체가 오너 일가와 등을 돌린 시그널 아니냐는 해석이 일부 나온다. IMF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을 겪던 삼양식품은 2005년 채권단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으면서 현대산업개발을 백기사로 끌어들인 바 있다. 고(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고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의 끈끈한 관계가 계기가 됐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삼양식품이 '불닭볶음면' 등의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기업가치가 오르지 않자 2대주주로서 우려의 시각을 가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달 법원의 1심 판결이 이 같은 우려를 더 심화한 셈이다. 특히 현대산업개발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법률상 지분 매각 요건이 생긴 것도 변수가 된 것으로 보인다. 지주회사는 계열사가 아닌 회사의 주식을 5% 이상 가질 수 없다는 행위제한 요건이 적용되기 때문에 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서는 삼양식품 지분 12% 이상을 팔아야 할 상황이다.
한 투자금융(IB) 업계 관계자는 "지분 매각 전에 경영권 분쟁을 시작하거나, 최소한 사회적책임을 강조하면서 회사 경영에 적극 참여해 주가를 올린 뒤 투자차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냐"고 풀이했다. 지난해 5월 현대산업개발의 지주사 전환과 함께 삼양식품 지분 처분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주목받은 바 있다. 작년 9월 기준 삼양식품 지분율은 삼양내츄럴스 등 특수관계인이 47.21%, HDC현대산업개발이 16.99%, 국민연금공단이 5.27% 순이다. 단순 표대결로는 오너 일가가 이길 가능성이 훨씬
한편 현대산업개발은이날 지분 매각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회사 관계자는 "비계열 회사 주식 가액이 자회사 장부가액의 15% 이내면 비계열사 주식이 5% 이상이라도 팔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조항이 있는데 우리가 가진 삼양식품 지분 12%가 해당된다"고 밝혔다.
[조시영 기자 / 손동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