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형 상장사들의 본격적인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방향 사전 공개를 시작했다. 국민연금의 위탁운용 자금 유치에 사활을 거는 민간 자산운용사로서는 국민연금 의안 결정 방향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여론전 선봉에 서면서 주요 상장사를 대상으로 한 견제가 더욱 강해졌다는 평가다.
국민연금은 12일 기금운용본부 홈페이지에 오는 20일까지 주주총회를 여는 23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의결권 행사 방향을 미리 공개했다.
이는 국민연금의 민간전문가 기구인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지난달 주요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사전에 공개하기로 한 결정에 따른 것이다. 대상은 국민연금 지분율이 10% 이상이거나 국내 주식투자 포트폴리오 중에서 비중이 1% 이상인 기업이다.
이날 사전 의결권 행사 현황을 매일경제가 분석한 결과 23개 상장사 중 11개사는 1개 이상 의안에 대해 국민연금의 반대표 행사에 직면했다.
국민연금은 사내이사 선임과 사외이사 선임, 감사 선임 안건 등에 집중 반대표를 행사하며 상장사들의 이사회 견제에 주력했다.
국민연금이사내이사와 사외이사·감사 선임 안건 등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한 상장사는 한미약품 현대건설 현대위아 신세계 농심 서흥 등이다.
의결권 행사 방향 사전 공개 대상 상장사는 100여 개 기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월 말 기준 국민연금 지분율이 10% 이상인 기업이 79개, 보유 비중이 1% 이상(2017년 말 기준)인 기업은 21개다. 수탁자책임위가 별도로 결정한 안건을 사전 공시할 계획인 점을 감안하면 한진칼 등도 사전에 의결권 행사 방향이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국민연금은 주총 이후 14일 이내에 의결권 행사 결과를 공개해 왔다. 국민연금이 내리는 의사 결정이 시장과 기업에 미칠 수 있는 여파를 감안한 조치였다. 국내 주식시장에 가장 '큰손'인 국민연금이 의결권에 대해 사후 결론만 공개하면서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이 실제 부결로 이어진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2014년 4건, 2015년 5건, 2016년 1건, 2017년 7건, 2018년 5건 등이다. 연간 반대 안건이 300여 건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연금 영향력이 사실상 유명무실했던 셈이다.
하지만 의결권 행사 방향을 미리 공시하게 되면서 국민연금은 주총 여론전의 선봉에 서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국내 증시에 투자한 자금 중 57조원을 민간 자산운용사에 위탁하고 있다. 위탁운용 자금을 받아야 하는 운용사로서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방향을 그대로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 입김이 강한 국민연금 거버넌스 구조를 감안하면 의결권 행사 방향을 사전에 공개해 여론몰이에 나설 경우 관치 논란이 증폭될 소지도 있다"며 "의결권 행사를 논하기 전에 전문성을 키우고 독립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준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