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열린 대한항공 제5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의장인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가 주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대한항공] |
예정보다 10여분 늦게 시작한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는 1시간 넘게 고성과 손가락질로 난장판이 됐다. 안건마다 주주간 의견대립이 이어지는가 하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건이 결국 부결되면서 주주 손에 물러나는 최초의 기업총수란 불명예도 안게 됐다.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빌딩 5층 강당. 제57기 정기 주총을 앞두고 1시간 전부터 주주들이 몰리면서 위임장 등을 확인하는 직원의 손길이 바빴다. 건물 밖에선 '범죄자 범법자 조양호를 구속하라' 등의 내용이 담긴 피켓 시위가 이어졌고, 오전 7시30분께는 '대한항공 정상화를 위한 주주권행사 시민행동'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반대 의결권 행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총 시간이 다가오면서 취재진 100여명도 몰려 주총장 인근은 장사진을 이뤘다.
제57기 정기 주총은 오전 9시10분께 시작했다. 이날 주총 의장으로서 주총 지연에 대해 먼저 사과한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의장)는 "지난해 항공수요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시장 경쟁 심화와 유가·이자율 상승으로 경영환경이 어려웠다"며 "올해도 금리 상승 및 국내경기 침체 등 불확실성이 예상되지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사업 구조로 매출액 13조2300억원, 영업이익 1조원 이상 달성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대한항공 매출액은 12조6555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6674억원이다.
이번 주총 안건은 ▲재무제표 및 연결 재무제표 승인 ▲정관 일부 변경 ▲이사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등이다. 우 의장이 재무제표 승인 건부터 차례대로 의안 처리를 주주들에게 요청했지만, 주주 발언이 이어지며 첫 안건부터 승인이 쉽지 않았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참여연대 등 주주의 대리인으로 대한항공 주총에 참석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발언권을 받아 "땅콩회항과 황제경영 논란 등으로 한진그룹 총수 일가는 대한항공 평판을 추락시키고, 한진해운 부당 지원으로 수천억원의 손실을 회사에 끼쳤다"며 "조 회장은 2년 전 국회에서 시정을 약속했지만 지금은 배임·횡령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이사회는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밝혀달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주 역시 "총수 일가와 관련한 기내면세품 납품 문제 등으로 회사에 수백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는데 감사마저 이뤄지지 않아 이사회가 제대로 관리감독을 한 건지 의심스럽다"며 "이사회와 기업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관리해 주주 손해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그러자 주총장 곳곳에서 "국회로 가야지 왜 여기와서 그래", "의장, 안건 관련한 것만 발언합시다", "주총 그대로 진행해라", "아직 재판 중인데 그 얘기가 왜 나오냐" 등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일부 주주가 일어나 손가락질을 하거나 발언을 막으면서 주총장이 혼란스러워지자 우 의장이 발표자에게 간략하게 발언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에 다시 일부 주주가 항의하면서 소동이 쉽게 끝나지 않았다.
결국 가장 주목받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건은 주총 시작 약 45분이 지난 오전 9시55분께 안건으로 올랐다.
우 의장이 "임기가 만료되는 조양호 사내이사의 중임 및 신규 사외이사로 박남규를 신규 선임하려 했는데 조 이사의 선임 건은 사전 확보한 위임장 의결권 내역 확인 결과, 총 참석주주 중 찬성 64.1%로 정관상 의결정족수 3분의 2에 미치지 못해 부결됐다"고 빠르게 선언하자 곳곳에서 탄식과 환호가 함께 나왔다.
이날 주총엔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 9484만4634주 중 위임장 제출을 포함해 주주 5789명, 출석주식 7004만946주(출석률 73.84%)가 의결권을 행사했다. 대한항공 정관에 따라 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해야 한다.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건이 부결되면서 조 회장은 주주 손에 물러나는 첫 그룹 총수란 불명예를 안게 됐다. 대표이사가 되려면 주총에서 사내이사가 돼야 하는 만큼 조 회장은 대한항공 대표이사에서 물러난다. 지난 1999년 아버지인 고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지 20여 년만이다.
대한항공 지분은 조 회장과 한진칼 등 특수관계인이 33.35%를 갖고 있고, 국민연금이 지분 11.56%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외국인 투자자 지분은 약 24%로, 소액주주 지분이 56%에 달한다. 전일 국민연금이 조 회장의 연임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힌 만큼 외국인 투자자와 소액주주 현장 의견이 이번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대표이사 직에선 물러나지만 대한항공의 모회사인 한진칼을 포함해 지분을 대량 갖고 있는 만큼 조 회장이 회사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고는 볼 수 없단 게 대한항공의 입장이다. 대한항공은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JV) 정착과 올해
이날 주총은 1시간여 만에 끝났다.
[디지털뉴스국 배윤경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