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한 단위가 천 원이라면 첫 주에는 천 원, 둘째 주에는 이천 원을 저금하는 식으로 저금 액수를 늘리다가 만기에 원금과 이자를 지급받는 적금이다.
처음 이런 상품이 나왔다고 했을 때 솔직히 '그게 뭐지' 하는 심정이었다. 보통 적금과 달리 조금씩 액수를 늘려간다는 것 외에 별다른 매력이 없게 느껴졌다. 그런데 상품을 출시하는 입장에서는 인터넷은행에 계좌를 가지고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 재미있는 상품으로 느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실제로 몇몇 '젊은' 사람에게 물으니 재미있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필자 입장에서는 왜 재미있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심지어 거꾸로 설계한 상품은 어떤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 단위가 천 원이면 첫 주에 큰 금액을 저금하고, 매주 천 원씩 줄여가는 식으로 가다가 마지막 주에 천 원을 저금한다면 저금한 원금은 원래 기획된 상품과 마찬가지지만 큰 액수가 오래 저금되어 있으니 이자는 더 많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동의를 구하기 위해서 '젊은'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그런 걸 누가 하겠냐'는 식이었다. 첫 주에 저금하는 금액이 크다 보니 부담이 된다는 얘기였다. 몇 달이 지나고 나서 이 상품의 판매 실적을 접하고는 역시 필자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확인했다. 계좌가 수십만 개, 예금 규모는 몇 조 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가입자들이 '재미있어서' 가입했다고 한다.
금융업에서는 정확한 셈이 가장 중요하다. 정확한 계산에 기초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전제로 하는 산업이 금융업이다. 그런데 금융업의 고객인 보통 사람들은 때로는 덜 정확한 어림셈을 할 수도 있고, 때로는 무엇이 합리적인지 끝까지 따져보지 못할 수도 있다. 위 적금 상품이 성공한 이유는 인터넷은행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재미'에 이끌린 의사결정을 할 것이라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서 온라인 공간에서는 '재미있는' 일에 대한 얘기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는 사실도 성공 요인이다.
지금 가계 저축률은 정체돼 있고 금융투자업계에서도 공모 시장이 축소돼 고민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 사례가 주는 시사점이 작지 않다. 자산운용업은 투자자에게 적합한 상품을 제공하고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산업이다. 투자 상품이 정확하고 합리적인 계산에 기초한 '이성'적 품성을 지녀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제는 이성적 품성뿐 아니라 재미와 온라인에서 소문 퍼트리기와 같은 '감성'까지 고려해야 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재미있다는 점과
[조홍래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