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무라이본드'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관련 소재 수출 규제로 한일 갈등이 불거진 가운데 진행되는 이번 발행의 성사 여부가 주목된다. 양국 갈등이 금융 분야로 확산될지 가늠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KT는 200억~300억엔(약 2170억~3250억원) 규모 사무라이본드 발행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번주 중 일본 자본시장을 대상으로 투자 의향을 확인한 뒤 이르면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발행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와 관련해 KT 엔화 채권에 'A3' 신용등급을 매겼다. 무디스는 지난 8일 "A3 채권 등급을 매긴 것은 KT가 한국 주요 사업 부문에서 시장점유율과 재무적 유연성 등 통신사업자로서 갖춘 경쟁력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KT는 지난해에만 두 차례 엔화 채권을 발행하는 등 자금 확보를 위해 사무라이본드를 적극 활용해 왔다.
발행 과정 역시 성공적이었다. 지난해 7월 KT는 200억엔(2년물 40억엔, 3년물 160억엔) 규모 사무라이본드를 발행했다. 당초 발행금액은 150억엔으로 책정됐지만 모집액 대비 3배 가까운 주문을 확보하며 증액을 결정했다. 당시 흥행을 놓고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북한 비핵화 논의가 시작되면서 한국 기업의 고질적 문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KT는 지난해 11월 발행한 사무라이본드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당초 발행 규모는 200억엔이었지만 두 배 이상 주문이 몰리며 발행 규모를 300억엔으로 증액했다. 지난해에는 KT 외에 다른 국내 기업도 사무라이본드 발행에 적극적이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2017년 국내 기업은 단 한 건도 사무라이본드 발행에 나서지 않았지만 지난해에는 2000억엔 넘는 사무라이본드를 발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북한을 둘러싼 긴장이 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과 달러화 채권에 비해 엔화 채권이 안정적으로 0% 수준 금리를 유지했다는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이번 사무라이본드 발행은 한일 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IB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발행에 나선 KT나 일본 투자자 모두 서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금리 등 발행 조건을 민감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규모가 큰 일본 쪽 공적기관 자금은 들어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 자산운용사나 은행 등으로 투자 자금을 모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 같은 우려와 달리 한일 갈등이 금융 분야로는 전이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과거 한일 갈등이 불거진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사무라이본드 발행에 나섰을 때 일본 쪽 기관 자금이 들어오지 않았음에도 흥행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만큼 이번 발행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내 기업들의 사무라이본
[정석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