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금융 시대' 소외된 노인들 ◆
↑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위치한 한 시중은행 점포를 찾은 노년층 고객이 번호표를 뽑은 뒤 자신의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주형 기자] |
최근 찾은 지하철 4호선 미아역 인근 A은행 지점에서는 노년층 고객 10여 명이 번호표를 뽑고 상담 순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80대 여성 박 모씨는 "가까운 곳에 지점이 없어지면서 지하철 두 정거장을 이동해 이곳에 온다"며 "창구 직원이 갈수록 줄어서 아들이 보내준 용돈을 뽑는 데 1시간가량 걸릴 때도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30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실에 따르면 금융사들이 디지털 전환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반면 오프라인 점포는 꾸준히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대 은행(신한·KB국민·KEB하나·우리·NH농협) 국내 영업 점포 숫자는 2015년 5093개에서 지난해 말 4699개로 400개 가까이 줄었다. 국내에 설치된 5대 은행 포함 자동화기기(ATM) 숫자도 2013년 말 12만4236대를 정점으로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물론 은행도 디지털 금융 소외계층을 줄이기 위해 각종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은행 대부분이 ATM에 화면 확대 기능을 제공 중이고 KB국민은행은 '어르신 전용 상담전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NH농협은행은 시력이 안 좋은 노년층을 위해 '큰 글씨 약관집'을 전국 읍 단위 지점까지 모두 배치했다. 금융 노사가 설립한 금융산업공익재단도 내년부터 소외계층 대상 금융교육을 신설해 진행할 계획이다.
디지털 금융 문맹의 또 다른 불이익은 금융권이 제공하는 각종 혜택에서 노년층이 소외된다는 것이다.
금융상품에 '모바일 우대'가 보편화되면서 노년층은 예금 우대금리나 대출금리 할인 같은 기본적인 금융 복지에서조차 소외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 조사에서 60대 이상 노년층이 모바일 뱅킹이나 간편결제·간편송금 등과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들어보지 못함'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들 서비스를 알지 못하니 결국 혜택에서도 외면받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고소득 노년층은 사정이 낫다. 금융권이 최근 자산관리(WM) 서비스를 강화하면서 이들에 대해서는 별도로 은퇴설계도 해주고 우대 혜택을 주면서 자금을 관리해주기 때문이다. 결국 디지털 전환으로 가장 골탕을 먹는 것은 취약계층 노년층인 셈이다.
이들은 혜택 역차별을 넘어 피해 대상자로도 전락하고 있다. 온라인 비대면 서비스는 설명이 부족하고 소비자가 이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이 어려운 사례가 대부분이다. 노년층이 제대로 모르고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다가 원치 않는 상품에 가입해 큰 손실을 입는 것이다. 또 부족한 금융지식 때문에 보이스피싱 등에 노출되는 노년층 비중 또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지난해 연령별 보이스피싱 피해자 현황을 보면 40·50대 피해액(2455억원)이 56.3%로 가장 많았고, 60대 이상은 987억원(22.6%)으로 2위였다. 하지만 증가율은 60대 이상이 233.3%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가장 컸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디지털로 이동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 "교육 외에는 사실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금융권과 당국,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종합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꼽히는 이유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디지털 확산으로 인한 계층 간 괴리)' 해소 정책은 종합대책보다 각 은행이 자율적으로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재 대면 서비스에 익숙한 노년층 등을 위해 은행 점포를 폐쇄했을 때 인근 우체국이나 상호금융 점포를
당초 금융당국은 반강제 규정인 모범규준 제정을 추진했지만 은행 반발에 따라 시행안 형태로 격하됐다.
사실상 강제성이 없는 조치다. 은행연합회에도 이슈를 총괄하는 조직이 나뉘어 있어서 업무 추진이 쉽지 않다.
[김강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