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없는 한국증시 ◆
그러나 곧바로 문 연 29일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외국인 매도에 시달리며 전일 대비 0.04% 하락한 2092.69에 마감됐다. 시가총액 합은 1400조원에 간신히 턱걸이했고, 2100선 회복은 연거푸 무산됐다.
맥을 못 추고 박스권 안에서 맴도는 한국의 코스피와 미국 증시의 상반된 모습이다. 28일 기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은 각각 1조1260억달러(약 1318조원), 1조1000억달러(약 1287조원)이고, 코스피는 같은 날 1400조원대를 기록해 격차가 극도로 좁혀졌다. 글로벌 경제를 이끄는 미국과 규모가 작은 한국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미국 기업 하나의 시가총액이 908종목, 792개사가 모인 코스피 전체의 시가총액에 육박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한국 증시의 이런 취약성은 한국 경제와 산업이 '혁신'을 찾지 못하고 있는 데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매일경제 취재 결과 미국은 지난 20년간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이 다이내믹하게 바뀐 것은 물론, 창업한 지 20년 내외인 '젊은 기업'이 급부상하며 증시 상승을 이끌었다. 20년 전 시가총액 2위였던 GE나 시스코, 노키아, 화이자 등은 현재 순위에서 찾아볼 수 없고, 10년 전 1위인 엑손모빌이나 P&G, IBM, AT&T 역시 현재 10위권 밖으로 밀렸다.
대신 2019년 미국 증시 시가총액 상위를 빼곡하게 채운 것은 기술, 그중에서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성장 산업을 영위하는 기업이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알파벳(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까지 혁신에 성공한 기술 기업이 상위권을 싹쓸이했다. 상당수가 1990년대 말~2000년대에 창업한 '신생 기업'이다. 역사는 짧지만 혁신을 통해 짧은 시간에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는 혁신 기업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한국은 20년 전 시가총액 2위였던 삼성전자 비중이 계속 커져 10년 전부터는 부동의 시가총액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년 전 현대전자라는 이름으로 시가총액 순위권에 있던 SK하이닉스를 비롯, 현대차, 신한지주, 현대모비스, LG화학 등도 수십 년째 시가총액 상위권에 머물러 있다. 새로운 기업은 삼성 계열의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네이버, LG생활건강 정도다. 이 중 혁신적인 신기술로 급성장한 기업은 네이버뿐이다. 윤창보 유니베스트 대표는 "미국은 2007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계기로 완벽하게 체질 개선을 했다"면서 "(경기를 타지 않는) 빅데이터 사업을 하는 기업이 성장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미국 증시를 주도하며 이끌고 나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의존도가 지나치다는 것도 한국 증시의 약점이다. 삼성전자가 코스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가 넘는다. 28일 기준 시가총액을 보면 1위인 삼성전자가 306조원인 데 비해 2위인 SK하이닉스는 5분의 1 수준인 60조원에 불과하고, 3~6위권 기업은 25조원 남짓으로 2위 기업의 절반도 안된다. 삼성전자가 무너지면 다른 코스피 종목이 아무리 잘해도 코스피 전체 경쟁력이 추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미국 증시는 시가총액 차이가 크지 않은 기업끼리 치열하게 경쟁하며 시장 전체를 끌어간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 1위 경쟁은 특히 치열하다. 지난 18일(현지시간)까지만 해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보다 시가총액이 앞서 있었다. 과거 '윈도우즈'에 갇혀 있는 듯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조직문화 개편, 이를 기반으로 한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으로의 탈바꿈 등을 거쳐 혁신을 일궈내며 8년의 부진을 딛고 시가총액 1위로 부상했다. 애플도 지지 않고 핵심 사업인 아이폰은 물론 제품과 서비스를 결합한 방식의 새로운 사업 발굴로 다시 주가를 끌어올려 재역전을 일궈냈다.
코스피는 시가총액 10위와 1위의 격차가 무려 15배 격차를 보이지만 미국은 3배 정도 차이에 그친다. 삼성전자 같은 '강한 기업'이 많고, 증시 체력이 그만큼 탄탄하다는 얘기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10년 전만 해도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약진하는 그룹에 속해 있었지만, 사실상 반도체만 성장하고 다른 산업에서 공백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은 기득권 세력이 해당 비즈니스에 먼저 들어가 혁신을 막는다"며 "당장 먹고살 문제가 시급하다 해도 정부나 기업 모두 리스크를 좀 더 감수하고, 산업의 먼 미래를 내다보며 절박함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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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혜 기자 / 안갑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