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척간두에 선 보험산업 (中) / 재편되는 국내 보험산업 ◆
최근 국내를 방문한 외국계 보험사 고위 임원의 얘기다. 실손보험과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높은 배경에 보험사기 가능성을 언급하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내뱉은 말이다.
생명보험업계가 저금리에 고통받고 있다면 손해보험업계는 삼중고에 짓눌려 있다. 매년 역대 최대를 경신 중인 보험사기 건수와 치솟는 실손·차보험 손해율이 그것이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보험사기 적발 금액'에 따르면 상반기 보험사기 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3.4% 증가한 4134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반기 기준 보험사기 적발 금액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적발 인원은 4만3094명으로 11.4% 증가하며 2017년 상반기(4만4141명) 이후 역대 두 번째를 기록했다. 적발된 보험사기 중 90%가 손해보험이었다.
자동차보험 손해율도 문제다. 지난 9월 11개 손해보험사의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일제히 90%를 넘겼다. 지난달에는 주요 손보사들의 손해율이 100%에 육박했다. 손해율은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 대비 고객에게 지급한 보험금의 비율을 말한다. 업계에서는 적정 손해율을 78~80%로 본다.
손해율 상승은 구조적인 요인이 크다. 올해 자동차 정비 공임이 오르고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등 원가 인상 요인이 있었지만 보험사가 이를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올해 두 번이나 자동차보험료를 올렸지만 인상률은 크지 않았다. 정부에서 자동차보험료를 주요 물가 관리 품목으로 보고 과도한 인상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는 경기 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서민의 발이나 다름없는 차 보험료가 인상될 경우 이로 인해 악화될 민심에 대한 우려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손해율 상승으로 인한 손실은 고스란히 보험사가 떠안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자동차보험은 4184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 적자 규모는 31억원 수준이었다. 올해 연간으로는 적자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실손보험 손해율도 심각하다.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의료 이용이 급증했을 뿐 아니라, 건강보험의 통제를 받지 않는 비급여 항목 진료가 늘어나는 '풍선 효과' 등으로 실손보험 손해율은 최근 130%까지 치솟았다. 이로 인해 상반기 손실액은 1조3억원, 올해 연간으로는 1조7000억원 손실이 예상된다. 실손보험 또한 정부가 인상률을 누르면서 손실을 주체할 수 없는 상품이 됐다.
현재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 등으로 구성된 공·사보험 정책협의회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분석한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에 따른 보험료 절감 효과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보험료 절감 효과에 따라 내년도 실손보험
한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는 "이런 식으로 정부가 보험료 인상을 억제하면 결국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다"며 "잘못된 가격 통제의 피해는 결국 소비자가 보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승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