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외이사 임기 제한 ◆
개정안의 핵심은 사외이사 재직 연한 신설이다. 상장회사에서 6년을 초과해 사외이사로 재직했거나 계열회사까지 더해 9년을 초과해 사외이사로 재직한 자는 더 이상 같은 회사 사외이사를 맡을 수 없다. 사외이사 재직 연한 규정은 시행령 시행 이후 선임하는 사외이사부터 적용된다. 올해 주주총회일에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 중 6년 이상 재직했던 이사는 교체 대상이 된다는 얘기다.
상법에 따르면 사외이사 임기는 3년을 초과하지 못하며, 회사는 사외이사 임기(1년·2년·3년 등)를 정관에 규정한다. 현재는 연임에 제한이 없다. 하지만 2월부터 3년 임기 사외이사는 연임까지만 가능하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사외이사 재직 연한 제한으로 올해 새로운 사외이사 후보자를 영입해야 하는 상장사는 최소 566곳(코스피 233곳·코스닥 333곳)으로 718명(코스피 311명·코스닥 407명)에 달한다. 2020년 주총에서 사외이사 선임이 필요한 12월 결산 상장사는 936곳, 1432명이다. 사외이사 교체 수요가 발생한 회사 60%가 연임 제한 규정을 적용받는다는 얘기다.
단 '금융사지배구조법'에 의해 사외이사 재직 연한을 적용받는 금융업종은 제외한 수치다. 12월 결산 상장사의 전체 사외이사 규모는 약 4000명이다.
아울러 사외이사 임기를 6년으로 제한했을 때 올해 주총에서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사외이사 신규 선임 수요는 85명으로 집계됐다. 셀트리온은 6명을 교체해야 하며 삼성SDI 4명, 삼성SDS 4명, 삼성전기 2명, 현대건설 2명, 현대제철 2명, SK텔레콤 2명, 롯데케미칼 2명 등이 교체 대상이다.
더 큰 문제는 사외이사 임기 제한 시행 시점이 오락가락하면서 상장사들이 준비할 시기를 놓쳤다는 점이다. 올해 시행 여부는 시행령 개정안이 최종 확정·공포돼야 확실해지는데, 이후 상장사들이 사외이사를 영입할 수 있는 기간은 한 달 정도뿐이다. 상장사는 주총 2주 전까지 사외이사 신규 선임안을 포함한 주총 안건을 공시해야 한다.
A상장사 대표는 "사외이사 후보군은 한정돼 있는데, 남은 기간에 새로운 사외이사를 고르고 영입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며 "올해 주총에서 사외이사 대란은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위헌 소지도 나오고 있다. 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헌법상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할 경우 '법률'로서 제한해야 함에도 '상법 시행령'에서 이를 제한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위헌 소지도 있다"면서 "해외 입법 사례로 소개된 영국의 경우도 권고 사항일 뿐 재직 연한과 관련해 선진국의 유사 입법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개정안에선 사외이사 자격 제한 기간도 강화됐다. 상장회사의 계열회사에서 최근 2년 이내에 상무(常務)에 종사하는 이사·집행임원·감사 등은 사외이사가 될 수 없는데, 2월부터 2년이 3년으로 늘어난다.
아울러 이사·감사 후보자에 대한 정보 제공 수준도 강화된다. 상장회사가 이사·감사를 선임하는 주주총회를 소집할 때에는 후보자가 △최근 5년 이내에 체납 처분을 받은 사실 여부 △최근 5년 이내에 후보자가 임원으로 재직한 기업이 파산·회생절차를 진행한 사실 여부 △법령상 취업 제한 사유 등 이사·감사 결격 사유의 유무 등을 주총 소집통지·공고사항에 포함해야 한다.
사외이사 자격요건 강화와 더불어 여성 등기임원 의무화도 기업들에는 부담이다. 최근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법인의 여성 등기임원을 의무화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시행일은 오는 7월로 예상된다. 이 법은 총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이사회에는 여성을 1명 이상 포함하도록 규제했다.
여성 등기임원 의무화의 경우 공시의무나 사유 미충족 시 불이익은 없다. 하지만 국민연금이나 의결권 행사 기관들이 이를 문제 삼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한국거래소도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공시처럼 등기임원 여성 비율을 공시사항에 포함시킬 가능성도 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기업 200곳 이사회는 평균 6.8명의 등기임원으로 구성됐으며 이 중 여성은 0.2명(2.5%)에 불과하다.
한편 상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주총 소집통지 시 사업보고서 등 제공 의무화는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주주가 사업보고서 등 충분한 정보에 기초해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상장사들은 주총 소집통지 시 사업보고서 등 통보 의무화 자체에 반대한다. 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주총 전 사업보고서를 첨부할 경우 현행 자본시장법상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과 외부감사법상 감사보고서 제출 기한 등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항과 배치된다"고 밝혔다.
12월 결산상장사 대부분은 주총과 관계없이 3월 말
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재무제표 승인이나 정관 변경, 임원 선·해임은 주총 결의 사항"이라며 "주총 소집통지 시 사업보고서를 첨부하면 이 같은 내용은 보고서에 빠지게 되고 사업보고서 공시 내용을 사후 정정해야 하기 때문에 중복 보고 문제도 야기된다"고 전했다.
[정승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