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출범하던 2017년 5월 당시만 해도 서울 중위가격은 6억635만원이었으나 고속으로 상승하면서 이달 사상 처음으로 9억원을 넘어섰다. 실수요자들 사이에서는 각종 규제의 기준이 되는 고가 주택 기준을 9억원에서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30일 KB국민은행 리브온이 발표한 월간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1월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9억1216만원으로, 국민은행이 이 통계를 공개하기 시작한 2008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9억원을 넘겼다. 2017년 1월만 해도 서울 중위가격은 5억9000만원대였고, 2018년 1월 7억500만원으로 올라섰다.
그해 9·13 부동산 대책의 영향으로 잠시 하락하던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지난해 5월부터 다시 오르기 시작해 작년 12월 8억9751만원으로 9억원 턱밑까지 차올랐고, 지난해 말 초강력 규제인 12·16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달 9억원을 돌파했다. 현 정부가 지난 2년8개월 동안 네 번의 종합 부동산 대책을 포함해 총 18번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3억원 넘게(50.4%) 상승한 것이다.
중위가격은 전체 아파트 시세 범위에서 '정중앙' 가격을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세 흐름을 판단할 때 쓰인다. 리브온은 자체 보유한 서울 표본 아파트 6750곳의 시세를 집계해 그 시세 중간에 위치한 '중위가격'을 매긴다.
리브온 관계자는 "실제 서울 아파트 절반이 9억원을 넘는다는 뜻은 아니다. 표본 아파트들 시세를 파악한 결과 서울 아파트 시세의 범위에서 중간 가격이 9억원이라는 뜻"이라면서 "서울 아파트 시세에서 상위가격이 올라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남·강북이 골고루 올랐다. 강남 지역은 2017년 1월만 해도 중위가격이 7억3000만원대였지만 2018년 9억원 가까이(8억9000만원) 올라갔고, 작년에는 10억원을 뚫어 올해 11억4000만원까지 도달했다. 강북은 2017년 4억3000만원대였으나 올해 1월 6억4000만원대까지 상승했다. 마포·서대문·동대문구 등 강북 대단지 아파트는 9억원을 훌쩍 넘겼다. 과거에는 '고가 주택'이 강남 등 일부 지역에 국한된 얘기였으나, 이제는 강남·강북 가릴 것 없이 역세권·대단지 아파트가 고가 주택으로 분류돼 규제를 받게 됐다.
중위가격이 계속 오르면서 앞으로 고가 주택 기준 현실화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가 주택으로 분류되는 9억원은 세금, 대출 등 정부 규제 적용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다. 1주택자여도 실거래가 9억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세가 부과되고 취득세율은 3.3%로 높아진다. '부자세'로 알려진 종합부동산세는 공시가격 기준이긴 하지만 역시 9억원(1가구 1주택)일 때 부과된다.
대출도 시세 9억원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규제지역에서는 9억원 초과 주택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축소되고 9억원 초과 주택을 보유하면 전세대출이 금지된다.
실수요자들은 "고가 주택이라니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집값이 오르자 대출 규제·세금 부담에 팔지도 못하고 이사도 못 가는 처지가 됐다. 최근에는 12·16 대책으로 고가 주택으로 분류되는 9억원 이상 주택 소유자는 전세대출이 제한되면서 이사 계획을 포기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사는 직장인 박 모씨(49)는 5억원 정도 하던 아파트가 지난 3년간 9억원 가까이 올라 이사 계획을 접었다. 초등학생 딸아이를 위해 올해 하반기께 서울 강남으로 이사할 계획이었지만 전세대출 금지 규정 때문에 이사를 포기했다. 박씨는 "지난 2~3년간 집값이 오르면서 얼떨결에 고가 주택 보유자가 됐다. 우리 아파트뿐만 아니라 서울 웬만한 곳은 다 올랐는데 고가 주택 기준도 높여야 하는
현재 고가 주택의 기준은 2008년 이명박정부가 1주택자 양도세 부과 기준을 종전 6억원 초과에서 9억원 초과로 높인 이래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권 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값은 두 배로 됐는데 고가 주택 기준은 10년 넘게 변함이 없다. 고가 주택 개념을 현재 시장 상황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선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