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위 위에 금감원 ◆
금감원이 DLF 판매은행 임직원에게 '끼워 맞추기'식 제재를 단행하면서 동일한 건에 대해 심의를 진행해야 할 금융위의 의사결정 범위가 제한되고 있다는 게 금융위의 '성토'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금감원이 이번 제재에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을 적용한 부분이다. 지배구조법 제35조는 지배구조법을 위반한 금융회사 임원에게 금감원장이 문책경고, 주의적경고, 주의에 해당하는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해임요구·직무정지 등 높은 단계의 중징계는 금융위가 직접 판단하고, 문책경고 이하 징계에 대해서는 금감원이 조치할 수 있도록 위탁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DLF 사태는 자본시장법이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충격적인 불완전판매 사례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불완전판매 관련 징계가 핵심이 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자본시장법 438조는 자본시장법과 관련한 임원 제재는 주의적경고와 주의 수준의 징계만 금감원에 권한을 위임했다. 해임요구, 직무정지, 문책경고 등 중징계는 금융위가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쉽게 말해 동일한 문책경고라 하더라도 지배구조법을 적용하면 금감원장이 확정할 수 있고, 자본시장법을 적용하면 금융위가 확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금감원이 자본시장법 대신 지배구조법을 적용한 것은 금융위를 '패싱'하기 위한 '꼼수'였다는 지적이 금융권 안팎에서 나온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감원이 지배구조법을 적용함으로써 금융위 권한을 의도적으로 위축시켰다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지배구조법을 적용할 경우 징계를 내릴 법적 근거가 충분한지에 대한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금융위는 금감원이 지배구조법을 적용했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논란의 핵심은 이번 DLF 판매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을 제재할 때 활용한 법으로 지배구조법 24조를 내세운 것이 맞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이 법에서는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을 뿐 이 기준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제재를 내리라는 규정은 없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내부통제 기준 준수 여부에 따라 금융당국이 해당 임원을 제재할 수 있는 근거를 담고 있는 만큼 현행 법률로 제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논란을 피하기 위해 금감원이 '내부통제 기준 위반', 즉 내부통제 부실이 아닌 '내부통제 기준 마련 미비'를 이유로 CEO에 대한 제재를 내린 것은 편법적인 발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내부통제 기준 마련 미비가 중징계 조치에 적용이 가능한지 의견 대립이 있는 상황에서 금감원이 공개적으로 CEO에 대한 조치를 단정해버린 것"이라며 "산하기관이고, 업무 위탁을 받아 수행하는 기관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고 비판했다
금감원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향후 과태료 부과·기관 제재 등을 결정해야 할 금융위도 운신의 폭이 좁아졌고, 결과적으로 금융위 권한을 위축시켰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금융위 관계자는 "사실상 금감원 제재심의 결정을 주도한 국장급이 금융위를 휘두르는 모양새"라며 "금융위가 금감원 뒷수습을 해야 한다는 거냐"고 성토했다.금감원이 스스로의 권한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정작 금융위 권한인 금감원 부원장 인사에 대해서 어깃장을 놓는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 금감원 부원장은 금융위원장에게 인사권이 주어져 있다. 통상적으로는 금감원장이 금융위원장에게 건의하고, 금융위원장이 조정 등을 거쳐 인사를 내는 절차로 진행된다. 하지만 원승연 금감원 부원장의 유임 여부를 두고 금융위와 금감원 간 갈등이 지속되면서 인사가 지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금감원이 인사안을 금융위에 올린 시점에서 2개월 가까이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정부 들어 정권 창출에 '지분'이 있는 인물이 금감원장이나 핵심 부원장에 임명되면서 '청와대'와 '고위층'을 뒷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 역시 금융위가 자체적인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 직원들이 정권 고위직과 연결된 금감원장은 물론 '실세 부원장' 눈치를 보느라 입맛에 맞는 결정만 내리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산하기관인 금감원이 금융위보다 오히려 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 최승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