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탄생한 이래 인간의 소득과 체중은 정비례 관계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부유한 사람일수록 잘 먹었다는 이야깁니다.
적어도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최근 반세기에는 이런 공식이 깨졌습니다. 과체중이 각종 성인병의 원인임이 밝혀지며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운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뉴욕 맨하튼에는 도처에 피트니스클럽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득이 높은 지역일 수록 피트니스클럽이 더 인기였습니다.
↑ 뉴욕 맨하튼 어퍼이스트 지역에 있는 펠러톤 매장 모습입니다. 맨하튼 다른 매장보다 말끔하고 정돈된 분위기였습니다 [박용범 특파원] |
고소득자들의 오피스가 밀집한 맨하튼 미드타운, 이곳에서 살찐 사람은 잘 보기 힘들었습니다.
이들은 점심을 샐러드로 때우고, 시간날 때마다 회사 근처 피트니스클럽을 찾아 트레드밀(런닝 머신)에서 뛰며 철저하게 건강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말이죠.
이렇게 운동을 하던 사람들, 어디로 갔을까요.
정답은 집입니다.
소득이 높은 사람일 수록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 비율이 높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른바 '홈트(홈트레이닝)' 열풍은 이런 와중에 탄생했죠.
◆코로나 수혜주로 올들어 주가 4배로 폭등
이런 홈트 문화를 주도하는 대표주자가 '펠러톤'(Peloton)입니다.
2012년 생긴 비교적 젊은 회사입니다.
↑ 연초 대비 4배 수준으로 오른 펠러톤 주가 [자료출처 = 구글] |
공동창업자이며 현재 CEO인 존 폴리(John Foley)는 유명 서점인 반즈앤노블(Barnes & Noble)의 전자상거래 부문 사장까지 지낸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가 펠러톤 창업 아이디어를 갖고, 수천명의 투자자를 찾아다녔지만 외면당했다고 합니다. 사이클리스트며 트라이애슬론(수영·사이클·마라톤 세 종목을 연이어 겨루는 경기) 선수인 그는 소신을 갖고 이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뉴욕에서 만난 분 중 '펠러토너'(Pelotoner: 펠러톤을 즐기는 사람)가 되며 인생이 바뀌었다고 소개한 분이 있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생존을 위해 홈트를 시작하며,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됐다고 합니다.
◆직접 체험해보니···속살은 미디어 기업
↑ 맨하튼 첼시 지역 펠러톤 매장 입구 모습, 상반기에는 코로나 사태로 문을 닫았지만 주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박용범 특파원] |
제가 내린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펠러톤은 미디어 기업입니다.
바이크,트레드밀 같은 하드웨어를 팔기는 하지만 무게 중심은 구독경제에 기반한 컨텐츠를 파는 회사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회사 명칭이 '펠러톤 인터랙티브'(Paleton Interactive)라는 점을 봐도 이런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먼저 발이 닫은 곳은 맨하튼 첼시 인근에 있는 체험샵입니다.
↑ 맨하튼 첼시 지역 펠러톤 매장에서 바이크를 체험 중인 박용범 특파원 |
신형인 '펠러톤 바이크 플러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각종 서류에 전자서명을 먼저했죠. 그리고 나니 신발 사이즈를 확인한 후 전용 신발을 지급받았습니다. 하나하나가 코로나19에 따른 피해가 없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이었습니다.
덧신양말도 이런 차원에서 지급됐습니다.
↑ 펠러톤 바이크 전용 슈즈 모습 [박용범 특파원] |
마침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바이크에 올랐죠. 360도 회전이 되는 24인치 화면엔 각종 컨텐츠가 가득했습니다. 생방 중인 컨텐츠도 있었구요. '동접'(동시접속자)이 수만명이 넘는 컨텐츠가 꽤 여러 건이 보였습니다.
↑ 펠러톤 바이크에 부착된 모니터에 나오는 운동 컨텐츠들 [박용범 특파원] |
같은 시간에 같은 컨텐츠를 보며 운동을 하는 사람들 명단이 뜨는 것이 보였습니다. 서로 격려하는 '하이 파이브'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건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눌러주는 것과 유사합니다.
펠러톤에서 운동을 함께 하며 새로운 커뮤니티가 마련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부분이 강력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인의 운동 강도에 맞춰, 컨텐츠를 선택하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강사와 1:1 호흡을 하는 느낌도 들지만, 무엇보다 '랜선'으로 함께 참여한 사람들이 있다는 느낌이 새로웠습니다.
◆바이크, 10주 대기할 정도로 주문 폭주
갑작스러운 방문 체험이다보니 뭔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펠러톤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이번엔 맨하튼 어퍼이스트에 있는 체험샵을 찾았습니다.
↑ (좌)맨하튼 어퍼이스트 지역 펠러톤 매장에서 박용범 특파원이 트레드밀(러닝머신)을 체험 중인 모습 (우)맨하튼 어퍼이스트 지역에 있는 펠러톤 체험매장 내부 모습 |
자세히 컨텐츠를 살펴보니 바이크, 트레드밀 외에 각종 근력운동용 컨텐츠가 다양하게 보였습니다. 요가, 명상 등 다양한 컨텐츠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펠러톤이 현재 판매 중인 운동기구는 불과 3가지(2021년 3월 트레드밀 신형 추가 예정)에 불과합니다.
펠러톤 바이크 가격은 일반적인 실내용 바이크보다 훨씬 비싼 대당 1895달러(구형)~2495달러(신형)입니다. 하지만 워낙 수요가 몰리다보니 바이크를 주문하고 배송받는데 4주~10주 이상이 소요됩니다.
↑ 펠러톤이 최근 출시한 바이크 플러스 모델. 주문 후 배달까지 10주 이상이 소요됩니다 [사진출처 = 펠러톤 홈페이지] |
◆죽어지낸 하드웨어, 컨텐츠 숨결로 살려
한달에 39달러를 내는 컨텐츠 이용료는 별도입니다.
펠러톤 회계연도는 7월부터 시작됩니다. 2021회계연도 1분기(2020년 7월~9월)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232% 늘어난 7억 5790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2분기(2020년 10월~12월)에는 매출이 1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회사 측은 보고 있습니다.
↑ 최근 6년간 매년 평균 100% 이상 성장한 펠러톤 매출 [펠러톤 IR자료] |
9월 말 기준 133만 명입니다. 1년 전 대비 137%가 늘었습니다. 바이크, 트레드밀 구매없이 컨텐츠만 구독하는 회원까지 합치면 400만 명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존 폴리 CEO는 "전세계에 돈을 내고 운동시설에 다니는 인구가 2억 명에 달한다"며 "향후 유료 구독자는 1억 명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존 폴리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그는 "미국 가구에 이미 3500만 개의 트레드밀이 보급돼 있는데 거의 쓰이지 않는다"며 "그저 하드웨어이고 재미도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만 펠러톤 이용자가 수천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피트니스 +' 출시하는 애플이 최대 경쟁자
존 폴리의 말,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홈트족이 모두 펠러톤을 쓸 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이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공룡들이 달려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애플입니다.
애플은 이미 9월에 도전장을 냈고, 14일(현지시간)부터 '애플 피트니스 플러스'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바야흐로 '구독형 홈트' 시대의 시작입니다.
강력한 컨텐츠 생태계를 가진 애플이 이 시장에 진입할 경우,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저는 당분간은 팰로톤과 애플 간 시장 간섭이 크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펠러톤은 하이엔드 시장을 겨냥해왔습니다. 고급 바이크, 트레드밀에 수천달러씩 투자를 한 고정고객은 쉽게 이탈하지 않을 겁니다. 구독료와 할부금을 포함시 월 100달러 이상을 내온 충성 고객이 강력히 있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바이크를 팔지 않습니다. 컨텐츠만 팝니다. 애플워치가 있어야 하지만, 이미 갖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애플 피트니스 플러스' 구독료는 월 9.99달러입니다. 연간으로 하면 79.99달러. 팰러톤의 두 달 구독료와 거의 같습니다. 물론 펠러톤도 바이크 구매없이 구독하는 12.99달러 요금제가 있긴 합니다.
크게 보면 이 시장은 펠러톤과 후발주자간 '벤츠, BMW vs 도요타, 폭스바겐' 식의 시장 분리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이런 양분화가 가능합니다.
◆아마존까지 가세하면 치열한 경쟁 불가피
여기에 아마존도 호시탐탐 이 시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바이크 제조기업인 '에셜론'(Echelon)은 지난 9월 22일 아마존과 협업해, '아마존 프라임 바이크'를 499달러에 내놓는다고 밝혔습니다. 아마존은 하루 만에 '사실 무근'이라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해프닝으로 무마하려고 했지만 아마존이 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펠러톤은 당장은 하이엔드 시장을 겨냥하며 품위를 지키려 노력하겠지만 언젠가 펠러톤은 가격을 내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가 회사의 성장성에 큰 변수가 될 것임은 확실합니다.
◆월가 애널 85%는 여전히 긍정 평가
↑ 향후 주가에 대해서 85% 이상이 강세장을 예상하는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 전망 [자료출처 = Seeking Alpha] |
펠러톤의 IR자료를 보면, 인상적인 한 페이지가 있습니다.
영화, 비디오게임, 음악, 도서 등 분야별로 파괴적 혁신자와 사라진 시장 참여자 분석입니다. 영화 분야는 넷플릭스를 필두로 디즈니, 애플 등이 최대 4만개의 지역 단위 영화산업 운영자가 사라졌고, 비디오 게임분야에서는 닌텐도 등이 최대 1만 3000개의 지역 오락실을 파괴했다는 분석입니다.
또 스포티파이, 아마존 등이 3300개의 레코드, CD 가게를 문 닫게했고 아마존 등이 최대 3만 8500개 서점을 없앴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펠러톤은 최대 3만 6500개의 헬스클럽과 피트니스 운영자를 파괴할 것이라고 써 놓았더군요.
팬데믹 이후 새로운 나타난 트렌드
'구독형 홈트'는 코로나 백신이 보급되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피트니스에서 땀이 전염의 매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다만 이 시장을 펠러톤이 계속 선도할 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뉴욕 = 박용범 특파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