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신년기획 REbuild 자본시장 ① ◆
바이든 당선인은 내년 1월 취임과 동시에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할 계획이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1조7000억달러(약 1870조원)를 투자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에 기민하게 반응한 나라가 중국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달 22일 베이징에서 영상으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9월에 이러한 구상을 밝힌 시 주석이 바이든 당선인 측 행보에 자극받아 ESG 전략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시 주석의 친환경 드라이브 정책에 따라 중국 CSI300 기업 중 ESG 공시를 낸 기업의 비율은 2013년 54%에서 지난해 85%까지 증가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ESG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글로벌 경제 질서를 지배할 새 키워드가 될 것으로 진단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미·중 간 무역분쟁으로 얼룩졌다면, 바이든 당선인 취임 이후에는 미국과 중국이 40조5000억달러(약 5경원)까지 늘어난 글로벌 ESG 자금을 둘러싸고 양보 없는 기싸움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환경과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을 강조하는 ESG 패러다임 이면에는 거대 자본의 머니게임이 맞물리기 때문이다. 10년 후인 2030년에는 세계 ESG 투자자산 규모가 130조달러로 급팽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2일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에 따르면 2006년 63개에 불과했던 서명 기관은 올해 3605개까지 급증했다. 금융회사와 연기금 등의 PRI 참여는 ESG 각 요소를 고려해 투자를 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다. 미국(683개) 영국(563개) 프랑스(292개) 등 선진국 기관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중국의 경우 2017년 7곳에 불과했던 서명 기관이 올해 51개로 급증했다. 한국은 11개로 집계됐다.
7조8000억달러(약 8500조원)를 운용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고위 임원 출신이 바이든 정부 경제팀에 합류한 점도 중국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블랙록의 ESG 상장지수펀드(ETF) 규모는 450억달러(100여 개)로 50조원에 이른다. 최영권 우리자산운용 대표는 "글로벌 양강(G2)인 미국과 중국이 ESG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모습이 자본시장에서 점차 구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SG 투자 5년새 60억弗서 1000억弗로…글로벌 자금 대이동
불붙은 ESG 패권경쟁
美 올 ESG투자 277억弗 유입
中도 관련펀드 20조원 돌파
구호에만 그쳤던 기업 ESG
코로나 이후 투자 원칙으로
도이치뱅크는 임원평가 반영
미래투자 주역 밀레니얼세대
"ESG반영해 기업투자 나설것"
정은숙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바이든 정부는 첨단기술 부문에서 대중국 압박을 지속하는 동시에 기후변화와 ESG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전망"이라며 "중국에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천문학적인 글로벌 자금이 ESG 투자에 쏠리면서 글로벌 스탠더드로 정착되고 있는데, 중국 정부와 기업만 외면하면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S(사회적 책임경영)와 G(지배구조 개선 등 투명 경영)에 앞서 E(친환경)에서만큼은 주도권을 잡겠다는 기류도 포착된다. 올해 중국 ESG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자산 규모는 처음으로 20조원(약 1282억위안)을 돌파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지속 가능성에 대한 관심은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ESG 투자 열풍으로 옮아갔다. 지금까지의 ESG가 철학적이고 선언적인 의미에 그쳤다면, 전대미문의 팬데믹을 경험한 각국 정부와 기업, 연기금, 금융회사, 개인투자자 등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ESG 투자에 쏟아붓고 있거나 쏟아부을 계획이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총 9조달러(약 1경원) 규모 자산을 운용하는 글로벌 30개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탄소중립(Net Zero) 자산운용사 이니셔티브' 출범을 알렸다. 이들은 2050년까지 투자한 모든 자산군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 ESG 투자를 현재 200억유로(약 26조원)에서 2025년 2000억유로(약 260조원)로 10배 늘리겠다고 발표한 도이치뱅크는 내년부터 고위 임원에 대한 보상을 ESG 투자 성과와 연계하겠다는 파격적인 계획을 선보였다.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낸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코로나19 이후 단기 효율성보다는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과 복원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 세계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며 "ESG는 잠깐 유행하다가 끝날 사안이 아니라 국제 정치·경제 질서부터 국가, 기업 등 사회 전반의 시스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많은 통계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ESG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GSI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전 세계 ESG 투자 자산은 40조5000억달러(약 4경5000조원)에 이른다. 2018년 30조6800억달러(약 3경4000조원)와 비교하면 1년 반 만에 약 1경원 늘었다. 폭발적인 증가세다.
도이치뱅크에 따르면 2030년 전 세계 ESG 투자는 130조달러(약 14경3000조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때쯤이면 전 세계 투자 자산 중 95%가 ESG의 각 요소를 고려하게 된다.
2015년 불과 69개, 60억달러에 불과했던 글로벌 ESG ETF 운용 자산 규모도 최근 370개, 1000억달러로 급팽창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올 들어 최근까지 미국 ESG ETF 순유입액은 277억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80억달러와 비교하면 자금 유입이 3배 이상 늘었다. 2015년 순유입액은 3억9180만달러에 불과했다. 5년 만에 세상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드러내주는 숫자다.
블랙록과 함께 ESG 투자 시장을 주도하는 스테이트스트리트(운용 자산 규모 3조1500억달러)에 따르면 글로벌 ESG ETF와 인덱스 펀드 규모는 올해 1700억달러에서 2030년 1조3340억달러로 8배 가까이 성장할 전망이다. 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환경 테마는 한 번 시작하면 100년 동안 지속되는 문제"라며 "ESG에 천문학적 자금이 몰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SG 투자 자금의 원천은 국민연금공단(NPS), 한국투자공사(KIC) 같은 전 세계 연기금과 국부 펀드다. 약 700조원을 운용하는 네덜란드 최대 공적연기금운용공사(APG)는 올해 초 석탄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한국전력 투자금 6000만유로(약 780억원)를 회수했다.
1조달러 규모로 세계 최대인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를 운용하는 노르웨이 중앙은행 투자관리청(NBIM) 수장인 니콜라이 탕엔(Nicolai Tangen)은 지난 10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하면서 ESG 성적표가 나쁜 기업은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NBIM은 지난해 ESG 평가를 근거로 42개 기업 투자를 거둬들였다.
ESG 패권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의 ESG에 대한 관심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모건스탠리 발표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 중 95%가 ESG 요소를 반영한 책임 투자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는 일반인(85%)보다 10%포인트 높은 수치다. 2030년까지 밀레니얼 세대가 부모 세대에게서 물려받는 자산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68조달러(약 7경500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최만연 한국 블랙록 대표는 "글로벌 연기금과 국부 펀드들이 현재 ESG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며 "주주 이익 극대화보다 환경과 지역 사회에 대한 긍정적 영향을 강조하는 밀
■ <용어 설명>
▷ ESG :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기업 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 투명 경영을 고려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ESG는 개별 기업을 넘어 자본시장과 한 국가의 성패를 가를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문지웅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