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자 추기자] 원하는 사람끼리, 함께 힘을 합쳐 집을 짓습니다. 따로 또 같이, 10가구가 힘을 합쳐 내 집이 아닌 '우리집'을 만들었습니다.
오늘 이곳을 소개해주실 주인공 김수동 씨는 이 집에 정착하기 전 총 15번의 이사를 다녔다고 합니다. 지금은 이 집이 안락한 휴식처이면서 더 이상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될 마지막 집이란 확신이 듭니다. 주인공은 이러한 공동체 주거 문화를 널리 알리는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이기도 합니다. 김씨는 노년에 혼자 살지 않고 같이 나이가 들고 이웃을 생각할 수 있는 삶을 꿈꿨습니다. 고심 끝에 공동주택이라는 주거 형태를 알게 됐고 이에 관심을 갖고 있는 7가구를 모으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둘 모여 현재는 10집이 됐죠. 현재는 그 꿈을 하나씩 이뤄가며 최종 목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백은 2016년 8월에 입주를 시작했습니다. 현재 총 10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3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북한강을 앞에 두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옆에 낀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여백은 총 2개 동으로 구성됩니다. 각각 '파란 여백' '하얀 여백'이라 명명된 2개 동은 지상층이 뚫려 있는 필로티 구조로 지어졌다는 공통점을 빼면 조금 다른 옷을 입고 있습니다. 김씨가 거주 중인 파란 여백은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하얀 여백에는 없죠. 장애를 가진 분이나 고령의 거주자가 있는 파란 여백 특성상 해당 동에만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처럼 거주민들의 니즈를 최대한 반영한 맞춤형 설계가 여백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보다 깔끔한 인테리어로 거주자들 입맛에 맞는 조형물과 구조로 건축했습니다. 반면 하얀 여백은 원목 계열의 따뜻한 내장재로 한결 다른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또 파란 여백과 달리 공동현관이 있고 가구별 신발장을 공유합니다. 이 역시 거주자들의 취향과 선호를 반영한 결과입니다. 총 10개 집은 그 모양도 제각각입니다. 거주하는 가족의 수, 선호하는 주거 형태 등에 따라 그 형태가 다릅니다. 그렇다 보니 층층마다 똑같이 위치한 기존 아파트나 빌라와 달리 현관문 위치조차 제멋대로입니다. 하지만 그것조차 멋스러울 뿐이죠. 공동창고에는 필요할 때마다 쓸 수 있는 다양한 농기구가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여백 안에는 10가구가 공유하는 모임 장소도 있습니다. 놀이방으로 쓰기도 하고 공부방으로 쓰기도 합니다. 빔프로젝터가 있어 근사한 영화관으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건물 뒤로는 작은 마당이 하나 있습니다. 겨울이라 휑한데도 꽃도 가꾸고 나무도 심고 장남감 같은 작은 온실도 있답니다. 삭막한 도시생활과 달리 초록의 내음을 맡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이번엔 옥상 테라스 공간을 살펴봤습니다. 저 멀리 북한산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 있고 한편엔 바비큐그릴이 위치해 언제든지 가족들이나 이웃끼리 분위기를 내며 고기를 구울 수 있죠. 이처럼 삶을 아늑하게 만드는 공간이 바로 여백입니다. 이번엔 김씨의 집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이 집 거주자는 총 4명. 방은 3개입니다. 거실에서도 무려 북한산 조망이 가능해 최고로 꼽는 산뷰 조망권을 확보하고 있네요. 김씨는 집이란 어떤 공간보다 편안하고 안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안전과 편안함은 물리적으로도 확보될 수 있지만 함께하는 이웃으로 채워질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세콤보다 안전한게 이웃이고, 최고의 복지도 이웃"이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러한 이웃과의 관계와 편안함이 결합했을 때 그 집은 그 어떤 집보다 안전하고 아늑해집니다.
이번엔 반대로 물어봤습니다. 함께 살아도 좋은 이웃이란 무엇인가요? 김씨는 그러한 이웃의 기준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양한 사람이 어울리는 게 되레 낫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사실 주택협동조합 특성상 다양함 때문에 그 가치가 커진다고 합니다. 외적인 기준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죠. 한데 옆에 계시던 부인 정은수 씨는 조금 다른 의견을 냈습니다. 정씨는 "특별한 조건은 없는 게 맞지만 이런 사람이면 잘 어울리겠다는 기준은 있다"며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좀 더 쉽게 말하고 다른 사람이 나랑 다르다는 걸 경청하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면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씨는 내가 모르는 타인과 함께 산다는 것이 어찌 보면 두렵기도 하고 염려가 될 수밖에 없다는 부분은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직접 경험해보는 것과 그냥 막연히 생각하는 것은 꽤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결국 한 발짝 더 나아갈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가 이러한 새로운 세상을 만날 기회 여부로 연결된다는 것이죠.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했는데 조금 의견이 달랐네요. 그래도 부부가 바라보는 지향점의 방향은 일치합니다. 가족 같은 이웃과 편안하게 사는 것. 이보다 더한 행복이 있을까요?
단점은 없을까요? 오늘의 주인공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정말로 단점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 아쉬운 부분을 건축할 때 보완을 했고 시작할 때 마음을 먹은 일인 만큼 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또한 이웃들과 매주 회의를 하며 그런 부분을 보완하다 보니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양한 연령과 세대가 함께 살다 보니 평소에는 경험하지 못할 행복도 많이 느낀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의 에너지가 넘쳐나고 가족 간 이해와 양보가 만연합니다.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다고 하네요. 공동육아 등 동일한 목표를 갖고 비슷한 연령대끼리 어울리는 것도 시너지가 나겠지만 그보다 이처럼 다양한 세대와 연령이 뒤섞여 어울리는 것이 더욱 재미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려줬습니다.
요즘 끝없이 오르는 집값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봤습니다. 사실 주인공 역시 그러한 집값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전세와 월세를 전전하면서 느낀 답답함이 컸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주택협동조합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직접 힘을 모아 건축하는 만큼 비용적으로도 부담이 작다고 합니다. 시행사가 만들어 공급하는 기존 주택사업과 달리 우리들이 필요한 공간을 설계하고 필요한 만큼의 공간을 만들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설계하고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죠. 특히 혼자 할 수 없는 건축이라는 어려운 일을 여러 명이 분담해서 힘을 모아 하다 보니 보다 수월하게 일이 진행됐다고 합니다. 실제 비용적으로 가구당 2억~3억원의 비용으로 집을 지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거주하며 드는 주거비용과 비교하면 아주 저렴한 수준입니다. 또 이웃을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됐고 소중한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서울시에도 이러한 공동체주택 인증제도가 있어서 이를 활용하면 또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조언해주기도 했습니다. 결국 요즘과 같은 공유경제 시대에 집이라는 요소 역시 이러한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왔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웃과 함께 공유경제의 힘을 활용한다면 경제적으로도 아주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주인공은 여백에 입주하면서 처음으로 '이 집이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더 이상 본인의 의자와 무관하게 이사를 더 안 다녀도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합니다. 삶의 안정을 바라며 노년을 준비하던 시점에 이렇게 알맞은 주거 형태를 만난 것은 그에게도 가족에게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노년이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든든한 이웃들이 있고 소중한 안식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동체주택에 대한 관심은 최근에도 많이 커져가는 상황입니다. 서울 집값이 몇 년 새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그 관심 역시 커졌죠. 정책적 지원에 대한 필요성 역시 커지는 상황입니다. 주택법상 공동체주택이란 분류는 따로 없기 때문에 다세대주택으로 분류됩니다. 그렇다 보니 함께 쓰는 다용도실 공간조차도 제대로 반영하기가 쉽지 않
다고 합니다. 비용이 저렴하다고 해도 대출 지원이 필요한 만큼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러한 공동체주택의 장점들이 널리 알려지고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와 더불어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추동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