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집행부 선출한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사진=한주형 기자 |
"둔촌주공은 애초에 적당한 선에서 협상해 공급했으면 벌써 분양했을 텐데, 정부가 막은 사이 분양가만 더 오르고 이제는 '넘사벽(넘어설 수 없는 벽)'이 됐네요." (40대 A씨)
"분양가상한제를 시행하면 분양가가 떨어진다면서요? 분양가가 떨어지기는커녕 계속 오르는 것 안 보이시나요? 정부를 믿은 제가 바보입니다."(50대 B씨)
"분양가를 올린 거면 대출이라도 나오게 해주지, 대출도 꽁꽁 묶어놨는데 어떻게 청약을 받나요? 애초에 현금 10억원이 있었으면 청약을 기다리지도 않았죠."(50대 C씨)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인 둔촌주공의 연내 분양이 물 건너가면서 청약 대기자들 사이에서는 실망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둔촌주공은 총 1만2000가구 규모에 일반분양이 4785가구에 달하는 곳입니다. 서울에서 이처럼 대규모 공급이 이뤄지는 것이 유례없는 데다, 서울지하철 5·9호선 더블 역세권 입지에 청약 대기자들의 기대가 큰 곳입니다. 2019~2020년 분양이 기대됐던 이곳은 정부와 분양가 협상이 어그러지면서 분양이 계속 미뤄지고 있습니다. 조합 내부 갈등까지 겹쳐 올해도 분양은 현실상 어려워 보입니다. 문제는 그사이 택지비는 계속 오르면서 분양가도 오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종 대출 규제와 청약·공급 등 정부가 쏟아낸 규제가 겹겹이 쌓이면서 청약 대기자들은 "(둔촌주공은) 현금부자 아니면 청약받을 수 없는 아파트가 됐다"면서 "차라리 작년에 정부가 양보하고 분양했더라면 기회가 왔을 텐데, 둔촌주공을 기다린 게 후회된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둔촌주공 조합(올림픽파크 에비뉴포레 재건축사업)에 따르면, 최근 둔촌주공 조합은 9개월여 만에 새 집행부를 꾸리고 사업 정상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 둔촌주공 재건축 조감도. |
조합 관계자는 "공사비, 자재 변경 등 사업 전반을 점검하고 내부 의견 수렴 등 해야 할 일이 많다"면서 "일반분양을 빨리 해야겠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새 집행부가 들어선 만큼 재건축 사업이 다시 속도를 내겠지만 현실적으로 분양은 내년으로 미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땅값은 계속 오르고…분양가 또 오를라
이렇게 또 한 차례 분양이 해를 넘기게 되니 청약 대기자들 사이에서는 초조함과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분양가는 치솟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분양가상한제로 분양가가 15%가량 내려갈 것이라고 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분양가상한제는 '택지비+기본형 건축비+가산비'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의 분양가심사위원회가 결정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분양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택지비'인데 택지비는 공시지가에 기반한 감정가입니다. 공시지가가 오를수록 택지비가 올라가고 분양가도 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대 최고 분양가'가 결정된 래미안원베일리(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가 HUG 산정 가격 때보다도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을 때 더 높은 분양가에 공급된 이유입니다. 3.3㎡당 5653만원으로 작년 HUG의 산정 가격인(4891만원)보다 16%가량 오른 수준입니다. 이에 따라 전용면적 49㎡를 비롯한 전 타입이 중도금대출이 불가한 9억원을 초과한 분양가로 공급됩니다.
둔촌주공도 분양이 미뤄질수록 분양가가 오르면서 중도금대출이 불가한 '9억원 선'을 돌파할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둔촌주공 1단지가 위치한 강동구 둔촌동 공시지가는 매년 오르고 있습니다. 둔촌주공은 전용 29~84㎡로 구성돼 있습니다. 가장 많은 물량을 차지하는 평형이 전용 59㎡(1488가구), 그다음이 84㎡(1237가구)입니다. 지난해 조합이 제시한 평당 3550만원을 적용하면 전용 59㎡는 8억4000만원 선으로 9억원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러나 평당 4000만원을 적용하면 59㎡ 9억6000만원, 84㎡ 12억8000만원으로 실수요 선호가 높은 평수가 9억원 이상이 됩니다. 이럴 경우 분양가 9억원 미만인 전용 29·39·49㎡ 초소형 타입에 한해서만 중도금대출이 가능하며 특별공급 물량이 나옵니다.
분양해도 '그림의 떡'…대출 불가에 좌절
청약 실수요자들 사이에서 '분양가 9억원'은 굉장한 벽입니다. 중도금대출을 40%라도 받는 것에 비해 분양가 전액을 현금으로 낼 때는 수억 원의 자금이 더 필요합니다.
"가점 쌓으면서 둔촌주공만 기다렸다. 2019년 착공한다고 할 때 '드디어 내 집을 받을 수 있겠구나' 기대했는데 기다린 내가 바보 같네요. 청약 받으려면 현금 10억원이 필요한 줄 알았더라면 청약을 일찌감치 포기했을 것입니다."(회사원 이 모씨)
게다가 2019년 '12·16' 대책으로 15억원 초과 아파트는 대출이 안 되기 때문에 입주 때 집값이 폭락하지 않는 한 대출 없이 자력으로 분양가를 마련해야 합니다. 올해부터는 분양가상한제 적용 아파트는 전세를 못 놓고 무조건 실거주해야 하기 때문에 자금이 부족하면 전세를 놓을 수도 없습니다.
"작년에 정부가 조합 뜻대로 3500만원대에라도 분양했으면 24평이라도 노려볼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답이 없네요. 정부가 공급은 막으면서 대출도 안 되게 해놓고 무주택자에게는 기다리라고만 하니 답답합니다. 도대체 이럴 거면 청약제도를 왜 운영하나요."(주부 김 모씨)
이렇게 되다 보니 수도권에서는 청약이 가점 높은 현금부자에게만 기회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둔촌주공과 붙어 있는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은 3.3㎡당 6000만원(호갱노노 기준)입니다. 둔촌주공이 3.3㎡당 4000만원에 공급되더라도 7억~8억원 이상 시세차익이 가능합니다. 둔촌동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대출을 묶고 분양가는 오르다 보니 10억원 있는 사람이 10억원을 더 버는 꼴이 됐다"고 했습니다.
[이선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