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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은평구 아파트를 팔고 강남으로 '갈아타기'를 준비 중인 주부 김 모씨(39)는 이사 갈 집을 알아보다가 '월세살이'를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처음에는 은평구 아파트가 4년 전 매수할 때보다 2배 이상 올라 이 집을 팔면 용산·서초·강남 등 집값이 더 비싼 동네로 옮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막상 매물을 찾으니 이사 가고픈 지역은 더 오른 데다 '15억원'이란 벽도 생겼다. 대출이 한 푼도 안 나오니 그나마 전세를 안아야만 살 수 있었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15억원 초과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에서 '갭 투자'가 늘고 있다. 투자 목적으로 시세차익만 노리는 다주택자나 법인 수요가 아닌, 자산 증식 후 더 좋은 동네로 이사를 가려는 '갈아타기' 수요다. 전문가들은 "딱 15억원 초과 아파트부터 대출을 금지한 규제가 시장을 왜곡하고 주거안정성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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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라는 자금은 매도자 전세 조건으로 채우기도 한다. 4년 전 서울 마포 아파트를 매수한 이 모씨는 매수할 아파트의 집주인이 전세를 사는 조건으로 간신히 강남으로 갈아타기에 성공했다. 비과세를 받아 시세차익 전부를 털어도 매수할 집 매매가격이 너무 올라 전세를 시세대로 맞춰도 2억원가량이 부족했다. 서초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은 이미 시세차익을 본 상태이고 빨리 집을 처분하려 해서 매수자 상황을 고려해 본인이 전세를 살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집주인에게 돈을 빌리는 케이스도 있다. 서울 마곡 집을 팔고 송파로 갈아타려는 김 모씨는 현재 일산에 전세를 살면서 '갈아탈' 집을 물색했다. 그러던 중 송파에 매수할 집을 찾았는데 1억원가량이 모자랐다. 김씨는 "이미 신용대출을 다 받은 데다 추가 자금을 마련할 수 없어 전세를 살고 있는 집주인에게서 돈을 융통했다"며 "은행보다는 높은 이율(5%)이지만, 대출이 전혀 안 나오니 이렇게 해서라도 돈을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갈아타기' 수요는 30·40대가 주도하고 있다. 이번 부동산 상승장에서 '큰손'으로 떠오른 세대다. 3~4년 전 집을 사 '2년 비과세' 요건을 갖춘 뒤 자녀 학령기에 맞춰 중대형으로 갈아타거나 학군지로 이사 가기를 희망하는 수요다. 그런데 서울은 2019년 12·16 규제로 15억원 초과 주택은 대출이 금지돼 있다.
잠실에 전세를 안고 집을 매수한 주부 김 모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5~6년이 남아 우선 전세를 돌리며 기다려볼 생각이다. 대출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영원히 월세살이를 해야겠지만 지금 못 사면 집값이 더 올라 영원히 못 갈아탄다는 걱정이 더 크다"고 했다.
이촌동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더 좋은 곳에서 거주하고 싶은 게 사람 욕심인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대출을 묶어놓으니 실수요자들이 갭 투자로 몰렸다"며 "갈아타려는 사람들은 전세가가 높은 매물을 찾다보니 전세가도 올라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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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