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이면 서당개도 풍월을 읊고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요. 무려 33년이면 어떻겠습니까. 한국의 전통유산에서 영감을 얻는 패션쇼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이상봉 패션 디자이너를 모셨습니다. 아래는 방송 인터뷰 전문입니다.
▶국민디자이너라고 하면 돌아가신 앙드레김 선생님을 많이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무한도전 출연 이후 국민디자이너라고 하면 이상봉 디자이너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텐데 본인은 어떻게 느끼십니까?
-너무 과찬이시고. 그분은 대선배시고 저는 아직 멀었죠. 이제 진행형 디자이너..외국에 나가면 신진 디자이너.
▶저도 무한도전에서 출연자 멤버가 패션쇼 하는 것을 보기도 했는데. 어떤 인연으로 출연하게 되셨나요?
-제가 개인적으로 정준하 씨를 알고 있었고요. 행사가 있으면 사회도 봐주시고. 정준하 씨를 통해서 김태호 PD한테 연락이 와서. 처음에는 망설였죠. 이 분들이 상당히 패션에 대한 열정이 있어요.
▶정형돈 씨도 맞는 옷이 있었어요?
-제가 볼 때는 식사 때마다 달라진 것 같아요. 가공 후 식사하면 다시 사이즈가 달라지고..
▶노홍철 씨 빼놓고는 키가 170센티미터도 안 되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아니에요. 더 커요. 정준하 씨는 거의 187 센티미터이고. 그다음에 노홍철 씨 그 다음에 유재석 씨가 거의 178 센티미터 정도 됩니다.
▶어느 분 옷이 제일 하시기 힘드셨어요?
-아무래도 정형돈 씨.
▶무한도전 때문에 국민 디자이너로 많이 부상하셨는데. 김연아씨 의상도 많이 디자인 하셨잖아요.
-어떻게 보면 저한텐 행운이기도 하고요.
▶어떻게 김연아씨 의상을 디자인하게 되셨어요?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한국 잠실 체육관에서 하지 않았습니까. 많은 외국 선수들도 초대해서. 그때 한글 티셔츠나 스카프를 했으면 좋겠다고 의뢰해서. 그때 만나고 나서 정말 딱 부러진.. 그때는 소녀여서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너무 아름답고 순수했던 소녀 때 처음 만났죠. 지금은 대학교 졸업하지 않았나요?
▶한글을 디자인에 포함시킨 것도 상당히 특색 있는 것 같아요. 외국 사람들도 좋아하던가요?
-상당히 좋아했습니다. 저는 한글을 외국 분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 했었고요. 처음에는 사명감도 있었고. 외국에 나가서 전시회나 패션쇼를 통해서 보여줬을 때 의외로 신선하고 상당히 모던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문자가 아니고 하나의 디자인이나 그림인줄 알았었죠. 대한민국의 한글이라는 위대한 문자가 있다는 것을 많은 외국 분들이 몰랐던 시절입니다.
▶한국을 홍보하는 대사로서의 역할도 하시는 것 같은데요. 김연아 선수 이야기 한 가지만 더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아까 정형돈 씨 같은 경우는 디자인하기 힘드셨다고 하셨는데 김연아 선수는 어떠셨어요?
-일단 평상복이 아니었고 얼음에서 벌어지는 발레 같은 거잖아요. 점프도 해야 되고 턴도 해야 되고 스피드가 있잖아요. 상당한 위험성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어떤 위험성이 있어요?
-비즈라고 해서 보석들이 박혀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만약에 떨어지면 스피드에 있어서 상당한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옷을 만들고 나서도 비벼보고 떨어뜨려서 흔들어봐야 되고. 상당히 신축성이라든지 보석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특수복 이죠 일반복이 아니고.
▶값도 상당한 원가가 들어갈 것 같은데. 제대로 받고 하신건가요?
-처음에는 나름대로 정말 저도 영광이었고 한글 옷을 입히고 싶은 욕심 때문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냥 해드린 걸로 했었고요. 세계 대회 나가서 산수화 했을 땐 나름대로 제가 받고서 했죠. 이런 이야기는 처음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좀 죄송스럽죠. 오늘 이상봉 선생님을 인터뷰 한다고 하니까 저희 집사람이 물어보더라고요. 동네 아줌마들을 보면 디자이너 분들 옷은 비싸서 잘 못 입잖아요. 앙드레 선생님도 그렇고 이 선생님도 그렇지만 유명한 디자이너들의 의상은 옷값은 어떻게 정해질까? 길다고 더 비싼 것도 아닐텐데. 어떤 기준으로 가격을 매기십니까? 뭐가 얼마다 이렇게 묻기는 좀 그렇고요.
-제가 방송에서 값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인 것 같은데요. 원가라는 개념은 분명히 있죠. 패션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기성복이 되면 산업이 되요. 김연아 선수를 위해서 만든 것은 특수한 가격이 매겨질 수 있겠죠.
▶패션쇼에 나오는 옷은 실제로 매장에 바로 걸릴 수 있는 옷일 것 같은데.
-걸리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특별하게 패션쇼를 위해서만 만드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해외수출. 외국에서는 드레스 문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드레스문화가 없잖아요. 파티를 가게 되더라도 일반 원피스 드레스에서 숄 하나 두르거나 그렇게 하지만 외국에서는 롱드레스, 이브닝드레스, 칵테일드레스, 나름대로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드레스에 대해서 다를 수가 있습니다. 원가가 있고 그 다음에 생산량은 비례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이 옷을 스파 브랜드, 대량생산하는 브랜드에서는 천개, 만개를 만들면 엄청 다운되겠죠. 기성복이지만 저희 같은 경우 4~50벌 밖에 안 만들거든요. 그러면 한 매장에 두 개정도씩 밖에 안 나간다면 기성복이지만 특별한 옷이니까 단가가 올라가겠죠. 생산량과 원가, 디자이너의 창의력, 여러 가지가 포함 되서 가격이 책정된다고 생각합니다.
▶대량생산하는 상품에 가까울수록 단가는 낮고 작품에 가까울수록 올라간다고 이해해도 될 것 같은데요. 여러 가지 패션을 가지고 실험적인 부분도 많이 실험하신 것 같은데. 루브르 박물관의 굿판이라고 하는. 기억하시죠? 이해경 선생님이신가요?
-그 분이 루브르 지하에서 칼춤을 추셨죠. 원래 전통 무속인의 옷을 입고 솟대를 꽂아놓고 샤머니즘을 패션으로서 나름대로 현대화 작업했던 것이지 무속인의 옷을 그대로 한 것은 아니죠. 일반적인 상품으로서도.. 하나의 종이로 만든 드레스입니다.
▶지금 나오는 화면에서 왼쪽이 이해경씨고 오른쪽이 누구인가요?
-모델이죠.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모델이었고 종이로 만든 드레스였습니다.
▶뒤에 있는 것이 솟대인가요?
-저 드레스는 서양을 상징하고 무속인 이해경 선생님은 동양으로 표현해서. 현대와 과거가 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했죠.
▶무속 복장은 많이 팔리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건 팔수가 없는 거죠. 그것은 우리 전통적인 옷이고요. 이해경 선생님이 갖고 계신 무속인 옷이고요, 앞에 오프닝에 내가 샤머니즘을 표현하기 위해서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던 삼 분 정도의 시간을 갖고 보여준..
▶오늘 제가 지금 선생님이라고 호칭을 하고 있는데 정치인들 같은 경우는 거물이다, 중진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패션디자이너로서 위치가 한참 위에 계신 분들에겐 뭐라고 호칭하는 것이 맞나요?
-우리나라는 좀 특별한 것 같아요. 일본도 비슷할 것 같은데 보통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씁니다. 오래됐거나 10년 이상의 경력이 있거나. 저도 선배님들한텐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쓰고요. 저희 디자이너들이나 후배들은 저에게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쓰는데. 해외에서는 디자이너나 크레이터, 창조자로서의 칭호를 쓰죠.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포토 그래퍼, 아트 드렉터, 패션에 관계된 일을 하는 분들은 다 크레이터로 총칭해서 쓰고요. 보통 패션디자이너나 크레이터라고 쓰고 유럽에서는 크레이터라고 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쓰고 있습니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싫진 않으시죠?
-제가 처음부터 듣던 얘기고. 저도 선배님들께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썼기 때문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정서에서는.
▶앙드레김 선생님은 본명은 김봉남이라고 해서 많은 분들이 웃기도 했지만 정을 많이 느꼈습니다. 우리 이 선생님은 본명이 따로 있으신가요?
-앙드레김 선생님은 김봉남이라는 이름 때문에 대중적으로 유명해지고 친숙해지시고 더 정감 있게 들렸던 것 같아요. 저는 제 본명이고요. 그래서 제 이름에 부끄럽지 말아야겠다는.. 제가 기성복 1세대거든요. 기성복을 하다가 제 브랜드를 했기 때문에 상당히 애착도 가졌었고 이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겠다 라는 생각으로 제 이름으로 브랜드를 만들었죠.
▶명함 가지고 나오셨죠. 명함이 유명하다고 그래서.
-85년도 제 브랜드를 런칭 할 때 만든 명함을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27년 28년 된 명함.
▶제가 명함을 보면 특이한 게 보통 이는 영어로 LEE를 쓰는데 LIE는 거짓말이라는 뜻도 있는데 왜 굳이 이렇게 고집을 하시는 거예요?
-제가 브랜드를 만들 때 내가 앞으로 만들 옷은 세상에 정말 오리지널틱한 옷을 만들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또 세상에서 아무도 쓰지 않는 이름을 쓰겠다. 그것은 저에 대한 다짐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작년에 LIE라는 브랜드도 만들었거든요. 이상봉의 책 아트 라는 북을 만들 때는 이상복의 진실과 거짓이라는 책도 냈었고요.
▶활용하고 계시는군요.
-인간한테는 두 가지 본성이 항상 존재하는 것 같아요. 내안에서 천사와 악마가 존재하듯이 나한테 진실과 거짓이 항상 싸우고 있고 어떤 것에서는 진실이 이겼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내 스스로 같이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 선생님의 유명한 일화 중에 하나가 권양숙 여사님, 노무현 대통령 영부인 의상을 디자인해서 유명하신데요. 퍼스트레이디 패션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그분을 만나게 된 것은 그 분이 영부인이 되시면서 저 혼자만 했던 것이 아니고요. 우리나라 디자이너 몇 분한테 의뢰를 하시면서 청와대로 초대를 하셨어요. 그래서 찾아뵙게 되었죠. 다양한 옷을 입으셔야 되잖아요. 평상복도 있지만..
▶주로 어떤 옷을 디자인해주셨어요?
-외국 순방 갈 때나 취임하실 때. 아무래도 공식적인 자리가 많으시니까.
▶어떤 컨셉 으로 주로 디자인하셨어요?
-외국의 모든 퍼스트레이디, 아니면 여성 총리들 옷을 리서치 하게 되었죠. 외교로서의 공식적인 자리면 품위도 있어야 되지만.
▶한국적인 요소도 넣으려고 노력하셨습니까?
-그거보다는 그 분한테는 어떤 품위, 그분이 갖고 있는 이미지, 상대 자리에 대한 것도 중요했던 것 같아요. 어느 분을 만나시면 그 분에 대해 배려하는 것도 있어야 될 것 같고요. 우리나라의 현대 의상을 보여줘야 되는 것도 있어야 되고. 제가 30여년을 했지만 어려운 게 패션인 것 같습니다.
▶요즘 북한문제가 많이 이야기되는데 리설주라고 아시잖아요. 김정은 위원장 부인이시죠. 리설주 부인의 옷을 사진을 통해서라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상당히 변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평양이 변해가고 있는 것을 리설주씨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보게 되는 것 같고요. 저는 요즘에 중국의 펑리위안 그 분의 옷이 우리나라 일간지에 어디 순방할 때마다 큰 사진으로 나오더라고요. 그런 것을 보면서 이제는 퍼스트레이디의 의상이 하나의 문화적인 측면, 공식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산업적인 측면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고..
▶지금 화면에 리설주 패션이 나오는데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파격적이죠. 지금 저희가 볼 때는 남한과 큰 차이가 의외로 없다고 생각할 수 있죠. 목의 노출 같은 것들이 상당히..
▶퍼스트레이디로서 세련되었다고 보이세요, 조금 서투르다고 보세요?
-아직까지 북한에서는 패션에 대한 정보가.. 최고 권력에 있지만 제가 볼 때는 많이 알고 계시지 않을 것 같아요. 일반적으론 상당히 튀는 옷이지만 한국에서 볼 때는 특별히 튀는 옷으로 얘기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셸 오바마에 대해서도 많이 공부하셨잖아요.
-제가 평소에 안하는 걸 질문하셔서 어려운데요. 미셸 오바마가 세계 패션계 퍼스트레이디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이라는 특별함도 있었지만 패션에 새로운 방향.. 그 전엔 케네디 영부인이었죠.
▶상당히 특색이 있는 것 같죠?
-강하죠. 그리고 그것을 즐기시는 분인 것 같아요. 영부인이 되셨을 때도 상황에 따라 옷을 입으세요.
▶저희가 시간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꺼낼 수밖에 없는데요. 지금 입고 있는 패션보다도 새로운 여성대통령이잖아요. 퍼스트레이디보다 대통령 그 자체인데 패션에 대해서 자문이나 조언을 한다면 이런 말을 드리고 싶다.
-가장 어려운 질문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연예인이 되었든 특별한 분들한테 평가를 하는 편은
▶평가보다는 앞으로의 바람?
-대통령이 되셨기 때문에 영부인 역할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은 하나의 문화가 아니라 하나의 산업으로서의 역할..
▶이 선생님 저희들 시간 때문에 나중에 모시기로 하고요.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