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마지막 황손, 이석 황실문화재단 총재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 건강은 어떠십니까?
-펄펄 뛰는 젊은이 같습니다.
▶ 고종 황제의 손자가 되시는 거죠?
-고종 황제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이 아버님 되십니다.
▶ 황손으로선 총재님이 유일하게 생존하시는 겁니까?
-조선왕조가 26대 고종 임금님으로 끝이 났는데 3남 1녀, 순종 황제가 첫째, 둘째가 의친왕, 셋째가 영친왕, 그리고 넷째가 옹주이신 덕혜옹주. 이렇게 3남 1녀로 끝납니다. 아버님 의친왕만 자손들이 많이 살아있습니다.
▶ 우리가 비운의 구한말 시기를 겪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황손으로서 왕자님으로서 사셨을 텐데요.
-2005년에 돌아가신 이방자 왕비의 아드님 이구 전하가 사촌형이 됩니다. 그 분이 돌아가신 다음에 제가 1순위 왕자로 되어 있습니다.
▶ 우리의 아픈 구한말 역사입니다. 사진을 보면서 설명해주시죠. 이분이 고종이신가요, 아니면 의친왕이신가요?
-가운데 정좌하고 계신 분이 할아버님 고종황제이십니다. 맨 오른쪽이 아버님인 의친왕이십니다. 두건을 쓰신 분이 큰아버님 되시는 순종 황제이시고요. 그리고 그 가운데가 영친왕. 일본에 잡혀 가셔서 일본 군인이 되셨죠. 그때 아마 잠깐 오신 것 같습니다. 맨 앞에 앉으신 아기가 덕혜옹주입니다. 고종 황제 옆에 계신 분이 순종 황제의 왕비인 순정효황후, 윤대비마마라고 낙선재에서 돌아가셨어요.
▶ 이것이 언제 찍은 사진인가요?
-제가 알기로는 90년, 100년 될 겁니다. 일제 식민지 직전에. 아버님께서 저를 예순 둘에 낳으셨어요. 그러니까 노인자제죠.
▶ 가계도도 살펴볼까요? 왕위 계승 서열 지금은 영순위.
-그렇죠. 저만 똑똑하면, 세를 가지고 있으면 되겠죠.
▶ 어떻게 사셨습니까? 일반인으로 태어나서도 구한말, 일제 식민지, 해방을 겪는 것은 쉽지 않은 삶이거든요. 그런데 황손으로서 사는 것은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맞습니다. 70 평생을 살면서 죽었다, 살았다, 죽었다, 살았다. 세상을 통탄하게 울다가 웃다가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비둘기집이라는 노래를 하면서.. 제가 처음엔 미 8군에서 노래를 했어요. 팔도강산에 있는 미군부대에 가는 봉사단체에 들어가서 영어노래만 불렀습니다. 저 다음으로 들어온 가수가 조영남, 제 위 선배가 최희준씨라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나한테 자리를 비어주어서 미 8군에서 행동을 하다가.. 제가 66년도에 월남 전쟁에 파병 나갔습니다. 그래서 팔에 부상을 당하고 돌아왔는데 그때 있던 부대 이름이 비둘기 부대에요. 그래서 비둘기집이라는 노래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 ‘내가 황손이다, 내가 왕실의 왕자였다.’ 그런 사실을 공연 중에 얘기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적은 없었는데 나이가 많으신 분들, 특히 밴드마스터나 멀리에서 삿갓을 쓰고 오는 유교학자들, 이런 분들이 내가 노래하는 곳에서 크게 절을 하곤 하셨어요. ‘아니 되옵니다. 어떻게 광대가 하는 노래를 하십니까?’ 제가 흑백 tv에 한참 나오는데 순종황제의 왕비이신 순정효황후 윤 대비마마께서 창덕궁 낙선재에서 어머님하고 나를 불러서 야단을 치셨습니다. ‘나라가 망하더니 광대가 되어버렸구나’하고 마루를 치면서 우셨어요.
▶ 그때 뭐라고 하셨어요? ‘알겠습니다. 더 이상 안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셨어야지 맞는데..
-어머님도 아무 소리를 못하시고.. 저한테는 큰어머님 되시니까 ‘왕비마마, 족보에서만 빼주지 마십시오.’ 그렇게 빌었어요. 석고대죄를 했어요.
▶ 어머님은 총재님을 이해하셨군요?
-그렇죠.
▶ 아버님인 의친왕께서 여러 자제분을 낳으셨다고 하셨는데 다른 형제분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시나요?
-3남 1녀로 끝난 아버님만 자손이 살아있습니다. 아들 넷이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딸이 다섯 명. 그런데 저만 대한민국에 살고 전부 외국에 나가 있습니다.
▶ 왕래는 자주 하시는 편인가요?
-그렇죠. 전화연락도 하고. 안부는 전하죠.
▶ 얼마 뒤면 10.26 사태가 벌어진 날인데 10.26때 자손 분들이 다 뿔뿔이 흩어진 일이 발생했다고 하는데요. 그건 뭡니까?
-제가 41살 때 인 1979년 10.26 사태가 나기 전까지 청와대 옆에 칠궁, 장희빈 사당에서 살았습니다. 거기에서 살다가 10.26 사태가 나자 직후에 신군사정부겠죠, 거기에서 저를 내쫓았습니다.
▶ 박정희 전 대통령 정부 때까지는 청와대 옆인 칠궁에서 가족들과 다 모여서 황손의 예우를 받으면서 지냈는데 10.26이 터지고 전두환 신 군부가 들어서면서 다 뿔뿔이..
-박 대통령께서는 역사에 대해서 상당히 관심이 깊으셨습니다. 그래서 생활비도 대주시고 품위유지를 많이 시켰습니다.
▶ 그런데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안 그랬군요?
-네.
▶ 참 먹먹했을 것 같아요. 황실에 있으시다가 갑자기 평민으로 돌아가는.
-그렇죠. 현실에 부딪치고 궁에서 나오니까.. 저희가 법을 압니까, 사회를 압니까, 돈을 압니까.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헌병들한테 ‘우리 왕손들은 세상을 몰라. 나가면 큰일인데.. 집도 없고 돈도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 ‘역사를 몰라요. 필요 없는 존재에요’ 그러고 내쫓은 거예요. 그래서 12월 9일에 제가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다시는 안 오기로 하고.
▶ 신군부도 조선 역사를 아는 분들이기 때문에 조선의 마지막 황실 가족들을 그렇게 매몰차게 쫓아내고 알아서 살라고 할 순 없었을 텐데요. 어떻게 그렇게 매정했죠?
-군사정권에서도 정신이 없었겠죠. 그래서 귀찮은 존재로 나락했습니다.
▶ 그렇게 황실을 나오셔서 바로 미국으로 가신 거예요?
-네,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영주권 없이 하루에 16시간 동안 준 노동을 하고 권총을 차고. 흑인들한테 몇 번씩 죽을 뻔 했습니다.
▶ 조선이 마지막 왕자가 미국에서 막노동하면서 하루하루 끼니 걱정 하면서 사셨단 말이에요?
-꼭 십년 만에 이방자 왕비 장례식 때 귀국했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잖아요. 예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처럼 황실에 대한 예우를 다시 해주지 않을까, 이런 기대도 가질 법도 한데요.
-박근혜 대통령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으로 되셨는데 옛날 우리 조선 왕조에서는 유교 정책으로 남존여비라고 해서 여자를 무시하는 세상이었잖아요. 그런데 여자 대통령이 나오셨다고 해서 저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지난 5월 4일 숭례문 준공식 때 뵈었어요. 가까이에 가서 말씀을 드리려고 하다가 못했죠. 사진만 한 장 찍고 왔습니다만.
▶ 아직 대통령하고 직접적으로 대면하신 것은 한 번도 없으신 거네요?
-네. 한 번 독대를 했으면 좋겠어요.
▶ 혹시 독대를 한다면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세요?
-다른 건 없습니다. 대한제국, 1897년 고종황제 할아버지께서 소공동 조선호텔 자리 환구단에서 우리나라를 대한제국, 황제의 나라로 하늘에 올리셨습니다. 그것이 14년만인 1910년에 일본 사람들이 옥새도 안 찍은 것을 강제로 한일 병탄을 해버렸죠. 그리고 이 나라가 35년을 고생했잖아요. 그리고 해방이 되었으면 그때 일본에게 있었던 영친왕과 이방자 왕비를 모셔서 상징적으로라도. 왜? 전쟁에 진 일본이라는 나라는 천왕을 살려두었단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국민이 합칠 수가 있었던 거예요. 이것은 얻어들은 소리지만 맥아더 장군이 그러셨데요. ‘일본도 천왕을 살려두었으니까 조선도 임금을 모셔야 국민들이 모일 거 아니냐.’ 그러니까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 ‘no'하신 거예요. 거기에서 불행이 싹튼 거죠.
▶ 솔직히 여쭙고 싶습니다. 영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입헌군주제 형식을 띤 현대 국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시 왕을 부활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으십니까?
-제가 알기로는 42개국이 아직 임금님을 모시고 있다 합니다. 그런데 경제와 모든 것이 부셔져도 국민들의 마음은 하나가 되어서 상당히 강한 나라로 있습니다. 제일 큰 나라가 태국이겠죠. 거기는 군대가 혁명을 일으키려고 해도 임금님의 허락을 받아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대통령이 있건 총리가 있건 간에 정치 종교 사회를 떠나서 하나의 어르신으로 황실이 상징적인 모습으로 있었으면 부활했으면 좋겠습니다.
▶ 혹시 청와대를 바라보면서 ‘저 곳의 주인은 나인데’ 이런 생각도 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매일 기도를 하고 있어요.
▶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네. 청와대가 옛날부터 신당 자리입니다. 제가 살던 칠궁이 궁정동 1번지인데 청와대는 2번지이고. 거기는 귀신이 다니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대통령이 거기만 들어가면 전부 이상해지는 거예요.
▶ 터가 안 좋은 건가요?
-터가 좋지 않죠. 거기는 대통령이 있을 수 없는 곳입니다. 과천이나 대전이나 이런 곳으로 대통령 궁을 옮겨야지 계속 대통령이 계시다간 끝이 좋지 않습니다.
▶ 어떻게 보면 이석 총재께는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가 가족의 이야기나 마찬가지 인 거잖아요. 요즘 한창 역사 교과서 때문에 논쟁이 심합니다.
-저는 왕손으로서 거기에 관계하고 싶진 않은데요. 정치인들이 왜 교과서에 그렇게 왈가왈부하고 당파를 이룹니까. 순수하게 자라나는 신세대들을 가르쳐야죠. 인성교육으로.
▶ 세종대왕이 이석 총재의 먼 할아버지 되시는 분인데..
-그렇죠. 정조대왕이 고조할아버지에요. 같은 혈손이죠.
▶ 최근에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이 이승만 전 대통령은 세종대왕과 맞먹는 인물이라는 얘기를 했어요.
-그것은 정말 막말입니다. 아마 친일 식민사관이 들어있는 학자 같습니다. 왜냐하면 역사도 모르고. 앞으로 우리 미래를 위해선 확실히 해야 합니다. 과거를 확실히 반성하고 양심선언을 해야 합니다. 참 안타까운 나라입니다, 이 나라.
▶ 이승만 대통령이 황실 부활을 반대했으니 개인적인 감정도 안 좋으시겠어요?
-그렇죠. 그 분도 양녕대군 파 17대손이라고 하는데 직계 황손은 임금님의 10촌 안입니다. 그 밖에는 전부 바깥의 사람들이죠. 그러니까 임금님을 없애겠다고 운동했다가 이승만 대통령이 감옥에도 들어갔데요.
▶ 얼마 전에 한 인터뷰에서 명성황후를 시해를 주도한 사람이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라는 주장을 하셨는데 어떤 근거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신 겁니까?
-제가 역사책을 보니까 을미사변에 대해서 쓴 것이 있습니다. 1895년 10월 8일 날 미우라 고로가 여우사냥을..여왕이 똑똑하시니까. 임금님도 못하는 것을 러시아시 청나라니 뭐니 하니까 안 되겠다 싶어서 무참하게 왕비를 시해했는데.. 그것을 나쁘게 한 대한민국 국민이 문제가 있습니다. 감히 이 나라의 어머니, 왕비를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그래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 책을 읽었습니다만 을미사변에 자세히 써져 있습니다.
▶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인 우범선 씨가 범인이다?
-네. 그때 훈련대장을 했는데 일본 사람들 앞에서 그런 나쁜 짓을 했답니다.
▶ 왜 조선 사람이 조선의 왕비를..
-간과 쓸개가 다 빠진 것들이죠. 나라가 망한 것을 알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앞에서 지휘를 했답니다. 일본 놈들이 들어오는데 다락에 상궁 옷을 입고 들어간 사람이 왕비라고.
▶ 역사적으로 규명해보아야 될 문제인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 앞서 황실의 부활을 바라신다고 하셨는데 솔직히 국민 여론 조사를 해보고 싶어요. 어떨까 싶어요.
-지난번에도 그랬습니다. 이럴 때에 촛불 시위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는 임금님이 계셔야 된다, 상징적인 임금이라도. 파워를 달라 재산을 달라, 이런 것이 아닙니다. 이 나라 정치 경제를 떠나서 위에 앉아.. 태국같이 혁명이 일어나도 야단을 칠 수 있고. 현재 아베가 얼마나 이 나라를 모독합니까.
▶ 다음에 저희들이 다시 모셔서 황실 얘기를 더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