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허승연 스위스 취리히 음악원 부총장(49)은 가까운 지인의 주검을 지켜보면서 슈베르트의 유작 소나타 3곡을 떠올렸다. 피아노 소나타 19~21번은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에 완성됐다. 동시대를 살았던 베토벤에 대한 존경심과 음악가의 고민, 지난 세월에 대한 회환과 성찰이 담긴 작품들이다. 곡 사이 사이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침묵이 흘러 피아니스트의 해석을 시험하는 대곡이기도 하다.
오는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이 곡들을 연주하는 허 부총장은 전화 인터뷰에서"슈베르트의 마지막 고백같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죽기전에 모든 것을 되돌아보는 음악이에요. 마지막 소나타(21번) 2악장은 서럽고 슬프지만 희망이 보이는 듯해요. 어두운 날씨에 한줄기 햇빛이 비치는 것처럼요.”
그와 이 곡들의 인연은 2010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과연 연주할 수 있을까 망설이다가 독주회를 열었다. 3년 후에는 독일 음반 레이블 아쿠스티카(ACUSTICA)를 통해 19번과 21번을 녹음한 앨범을 발표했다.
그는"슈베르트 선율은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해주고 인성을 닦을 수 있도록 한다. 항상 존경하는 작곡가여서 감히 손을 못대고 있다가 슈베르트 언어를 약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연주를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작곡가 리스트 작품은 화성이 많아 꽉 채워지는 음악이에요. 그에 반해 슈베르트는 아주 심플하게 들리죠. 그러나 결코 단순하지 않아요. 마치 가곡 같죠. 30대에 어떻게 이 곡을 작곡했을까. 짧은 삶이었지만 마치 인생을 길게 산 사람 같죠. 고개를 숙이고 음악에 경이를 표하는 느낌으로 연주해야 합니다.”
세 곡의 연주 시간은 모두 110분. 8년만에 여는 고국 독주회는 엄청난 집중력과 체력을 요구한다.
"관객에게도 어려운 음악회일 겁니다. 저한테도 행복하지만 힘든 시간이고요. 그저 편안히 듣고 갈 수 있는 음악회는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정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지켜봐줬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장식하지 않은 음악, 제 마음 속 소리를 듣기를 바래요. 관객들이 차분하게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이 작품들을 연습하면서 그도 지난 세월을 돌이켜본다. 독일 하노버 음대와 쾰른 음대를 졸업했고 여동생 바이올리니스트 허희정, 첼리스트 허윤정과'허트리오'를 결성해 왕성한 연주 활동을 펼쳤다. 무조건 그를 따라주는 가족 덕분에 행복한 음악가였다.
그러나 2003년 무거운 접시를 들다가 오른손 넷째 다섯째 손가락을 다쳤다. 쉬는 동안 갑자기 새로운 공부를 하고 싶어 스위스 경제대학에서 예술경영(Culture Management)을 전공했다. 2005년 신문 공고를 보고 지원해 취리히 음악원 부학장이 됐다.
"손가락 부상을 입었을 때'이게 내 인생에서 기회인가' 생각했어요. 뭐든지 빨리 결정하는 스타일이죠. 음악 경영에 관심이 많아 새로운 일을 찾았어요. 다행히 손이 금방 나아 연주도 계속하게 됐고요.”
4월에는 허트리오
그는 "소리를 각양각색의 동그라미와 삼각형으로 표현한다. 청각 장애자들도 눈으로 음악을 볼 수 있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02)541-2513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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