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4월 실상사 요사체에서 최인호와 법정이 마주 앉았다. <사진 제공=덕조 스님> |
불가의 수행자와 가톨릭 신자가 마주 앉았지만 둘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길로 합쳐졌다. "모든 것은 받아들이기에 따라 행복이 될 수도 있고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법정의 말을 시작으로 대화는 사랑, 가족, 자아, 진리, 삶의 자세, 시대정신, 참 지식, 고독, 베풂, 죽음으로 이어진다.
3월 11일, 입적 5주기를 앞둔 법정 스님과 최인호 작가의 산방대담집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여백미디어)가 나왔다. 2003년 4월, 길상사 요사채에서 가진 법정과 최인호의 네 시간에 걸친 대담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은 원래 최인호 생전에 법정의 기일에 맞춰 출간될 계획이었다. 2013년 9월 세상을 떠나기전 최인호는 병이 깊은 중에 법정 스님의 입적 시기를 전후해 책을 펴내라는 유지를 남겼고, 그 뜻은 2년 여만에 결실을 맺었다. 책의 제목과 구성은 최인호의 뜻을 그대로 살렸다.
최인호와 법정의 인연은 속세에서 20여년간 이어졌다. 첫 만남은 1980년대 초반 잡지사 샘터에서였다. 소설 '가족'에 미주알고주알 공개되는 가족사에 대해 부인이 화를 내지 않냐는 법정의 질문에 그는 쓸데 없는 내정 간섭을 받은 마냥 반감을 가졌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1990년대 초 불교에 심취해 전국의 절을 돌아다니며 경허 스님 일대기 '길 없는 길'을 연재하던 무렵 법정과 그는 깊은 교감을 나눴다. 수행자로 대하는 듯한 따뜻한 눈길에 그는 스님의 법제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는 것이다.
열 번 남짓한 만남을 통해 수필가와 소설가로서 당대를 대표한 법정과 최인호는 서로를 응원하고 독려하며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 최인호의 대표작 '길 없는 길'은 이날 "불교소설을 쓰고 싶습니다”라는 그의 말에 "쓰고 싶어 하면 언젠가는 쓰게 되겠지요. 업이란 것이 그런 것입니다”라는 법정의 한마디 응원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털어놓는다.
대담의 마지막 질문은 죽음에 관해서다. "스님, 저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 법정은 죽음을 또 하나의 여행
[김슬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