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킹스맨 |
‘킹스맨’의 인기는 ‘B급 감성’의 승리로 읽힌다. ‘킹스맨’은 과묵하고 빈틈없는 전형적인 스파이와 대척점에 있다. 유치하고, 부족하고, 어이없는 ‘B급’ 감성이 충만하다. 제임스 본드(‘‘007’), 제이슨 본(‘본 아이덴티티’)은 멋있지만 거리감이 느껴졌다면 ‘킹스맨’은 한결 친숙하게 느껴진다. 딱딱한 스파이물을 만화적 상상력으로 포장하고 유머를 얹어 비튼 이 영화는 뿌리를 ‘B급 정서’에 두고 있다.
비밀 첩보조직의 태생은 그럴 듯하다. 160년 전 영국 왕실 재단사 출신들이 ‘킹스맨’이란 조직을 만든다. 잘 빠진 정장, 긴 우산, 윤기나는 구두는 킹스맨의 필수 아이템. 양복이 교복같은 신사 ‘킹스맨’은 어두운 곳에서 악당을 제거하며 지구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설정 외에는 어떤 지점에서도 기존 스파이물을 답습하지 않는다. 매튜 본 감독과 만화 작가 마크 밀러는 “스파이 시리즈는 시시하다”는 생각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 곳곳에서 감독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최정예 킹스맨 해리(콜린 퍼스)가 지목한 후배 킹스맨은 일 없이 길거리를 배회하던 양아치(에그시 역의 태론 에거튼)다. 제임스 본드는 최첨단 무기를 자랑하지만 킹스맨에겐 방탄 기능이 있는 장우산, 독 묻은 칼을 숨긴 정장 구두가 무기다. 킹스맨에겐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끊이지 않는다. 에그시가 악당을 없애러 나가기 전에 입구에 서있는 번쩍이는 큰 총을 보고 가져가려할 때 비서(멀린)는 “그건 내 총”이라고 한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이죽대고 낄낄댄다. 악당이 우글대는 소굴에 갇힌 에그시에게 인질로 붙잡혀 있던 스칸디나비아 공주가 유혹한다. 머리 위로 총탄이 날아다니는데 에그시는 “조금만 기다리라”고 대꾸한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원초적 재미는 젊은 관객의 취향을 저격했다. 4일 CGV에 따르면, 킹스맨 관객은 20대가 50.5%로 절반을 넘겼다. 30대는 35.3%, 40대는 12.5%에 그쳤다. 성별로 보면 여성은 57%, 남성은 43%였다. 코믹 액션물이 여성관객의 지지가 압도적인 것도 이례적이다. ‘B급 정서’에 스타일과 멋을 살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로맨스 영화에서 '왕자'역을 맡아온 콜린 퍼스는 절도 있는 영국식 발음으로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말한다. 신사의 멋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바른 자세를 드러내는 깔금한 정장은 여성 관객들의 '수트 로망'을 자극한다. 이지적인 뿔테 안경을 쓴 콜린 퍼스가 장우산을 휘두르며 불량배들을 때려눕힐 때는 미중년의 박력에 놀라게 된다.
죽이고 찌르는 잔인한 장면을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버무려 광고같은 화면으로 탈바꿈한 전략도 근사함을 더한다. 킹스맨이 교회 신도들을 몰살시키는 장면. 킹스맨은 3분 40초간 사람들을 찌르고 때리고 집어던진다. 머리통이 박살나고 목에서 피가 솟구치지만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웅장한 음악과 함께 리드미컬한 화면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영화 후반부에 악당들이 폭죽처럼 머리가 터지는 장면도 압권. 발칙하고 무례하지만 통쾌함에 전율하게 된다. 전멸의 쾌감과 시각적 즐거움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질 낮은 예술품을 뜻하는 키치적 취향은 마니아층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주인공 에그시는 실패하고 꿈을 잃었던 루저였다. 루저를 주인공을 내세운 비주류 정서가 젊은층의 공감을 샀다.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서 스파이물을 재미있게 풀었다”고 했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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