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칠씨 밥 한번 사세요”
살 날보다 산 날이 더 많은 할아버지에게 봄바람이 부는 것일까. 강제규 감독의 영화 ‘장수상회’는 노년에 찾아온 가슴 떨리는 로맨스를 들려준다. 마지막까지 사랑을 지킨 노부부의 삶을 통해 500만명 가까이 울린 다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처럼 이 작품 또한 그레이 로맨스의 열풍을 이어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주인공이 노인들이라고 영화도 칙칙할 거란 예상은 성급하다. 사랑 앞에선 누구다 다 똑같다. 데이트를 앞둔 성칠은 마트 사장 장수(조진웅)에게 조언을 받는다. 여자한테는 무조건 예쁘다고 말하라고. “내가 밥도 사는데 왜 그래야하냐”고 버럭 화를 내던 성칠은 정작 금님 앞에서 “신발이 예쁘다”며 수줍게 웃는다. 눈꺼풀은 처져있고 얼굴 가득 주름이 가득 패인 어르신들이지만 사랑에 빠진 모습은 귀엽고 발랄하다. 성칠은 금님으로부터 전화가 올까봐 집 전화를 침대 옆에 두고, 금님은 성칠한테 문자가 오면 얼굴이 확 밝아진다.
성칠의 사랑을 막는 것은 돈많은 수컷들도 아니고, 부모님의 반대도 아니다. 거부할 수 없는 육체의 노쇠함이다. 금님과 꽃놀이를 가기로 한 날, 금님이 나타나지 않는다. 난소에 질병을 앓고 있던 금님이 건강이 악화되면서 병원에 입원한 것. 중반부터 영화는 반전의 변곡점을 넘으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영화가 품은 반전을 밝힐 수 없는 게 아쉽다. 갑작스럽게 성칠에게 접근한 금님의 정체는 무엇일까. 관객은 금님이 성칠의 재산을 보고 접근한 ‘꽃뱀’일까 의혹의 눈초리를 보낼 수 있다. 강제규 감독은 영화 곳곳 금님의 정체를 암시하는 단서를 무심하게 던져놓는다. 영화 후반부 단서들이 하나로 모아지면서 금님의 정체가 밝혀질때 머리가 멍해지는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황혼의 사랑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유한한 생의 끝자락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일 터다. 두 볼이 발그레 붉어지는 것이야 첫사랑때도 마찬가지겠지만, 또다른 사랑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점에선 애가 끓고 곡진하다. 성칠과 금님의 알콜 달콩 데이트를 볼때 흐뭇한 미소가 떠오르면서도 마음 한켠이 짠한 이유다. 사랑은 뜨겁게 불타오르는 순간 ‘완성’되는 게 아니고 죽을때까지 지켜야 ‘완성’된다고 영화는 말한다.
운명이 다하는 날까지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삶이 ‘판타지’가 된 요즘, 영화는 영원한 사랑에 대한 갈증을 풀어준다. “시간이 흐르고 기억이 퇴색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다” 숱한 로맨스 영화에서 반복된 주제가 이
노년의 ‘화사한 끝사랑’은 벚꽃이 흐드러질 4월9일 스크린에 피어난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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