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어느 겨울 아침 약속시간에 쫓겨 급히 나서던 천양희 시인(73)은 거울을 보다 큰 충격을 받았다. 단지 첫 단추를 잘못 채웠을 뿐인데 옷은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잘못 채운 첫 단추가 준 깨달음은 시인에게 첫 문학상을 안겨준 첫 시로 다시 태어났다.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단추를 채우면서’)
시인으로 산지 오십 년을 맞은 천양희 시인의 삶과 문학적 체험, 시 창작 강의를 담은 ‘첫 물음’(다산책방)이 나왔다. ‘마음의 수수밭’‘오래된 골목’ 등의 시집을 냈고,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한 시인은 이 책에서 자신의 시가 태어난 순간, 시를 쓰는 힘겨움과 즐거움을 가감없이 털어놓는다. “지금도 원고지를 대하면 원고지 사각형의 모서리가 절벽처럼 느껴져서 거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 쓸 때가 있다”면서도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운명의 고비에 처했을 때, 그때마다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시를 쓰는 일이었다. 시를 쓰는 동안만은 나는 내가 아닐 수 있었고 나를 잊을 수 있었다.”
소녀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등단 무렵의 경험도 들려준다. ‘돈도 밥도 안 되는 시’를 재밌게 쓸 수 있는 방법도 소개한다. 작가가 알려주는 시를 쓰는 비결은 질문하고, 찾아가는 것이다.
“왜 그런가요? 라는 질문을 계속하다 ‘왜요?’라는 시 한 편을 얻었고,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믐달’을 썼다. 반복되는 생활이 권태롭거나 변화가 없어 답답하다고 느낄 때마다 새벽시장에 찾다가 ‘새벽시장’을 완성했다. 시인은 ‘무엇을 쓸 것인가보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어떻게 표현하는가보다 사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다리고 기다리는 일이다.
“시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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