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로기수 사진 |
이 대립축에 낀 주인공이 바로 탭댄스를 추는 북한군 소년 ‘로기수’. 그의 형 ‘로기진’은 해방 동맹 핵심 리더다. 동생을 살리기 위해 수류탄으로 자폭한다. 동생 역시 형을 위해 포로수용소장을 암살하려고 방아쇠를 당긴다. 해방 동맹의 지령이었다.
그런데 동생의 총에서는 총알이 나오지 않는다. 이 사실을 알아챈 형이 동생 친구를 시켜 미리 빼놓았다. 탭댄스에 빠져든 동생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었다.
겁에 질린 동생이 절박한 스탭을 밟을 때 관객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달 12일 개막한 소극장 창작 뮤지컬 ‘로기수’가 뜨거운 형제애와 강렬한 스토리로 객석(400)을 녹이고 있다. 종군기자 베르너 비쇼프가 한국전쟁 당시 촬영한 사진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 리얼리티를 더한다.
상징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무대 세트 속에서 배우들은 거침없이 에너지를 발산했다. 특히 로기수 역을 맡은 윤나무의 눈빛 연기와 춤이 압권이었다. 무료한 수용소 생활에 지친 그의 눈은 공허하고 황량했다. 그러나 탭댄스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미군 보급소에서 물건을 훔치다 잡혀 어쩔 수 없이 댄스단에 소속됐지만 춤을 통해 해방감을 느낀다. 흑인 장교 프랜이 “눈을 뜨고 귀를 열어봐. 세상의 모든게 리듬이고 춤”이라고 가르칠 때는 비웃었지만 차츰 춤에 빠져들어간다. 다듬이 소리에도 스탭을 밟는다. 형에게 들키자 “내가 진짜 내가 된 순간, 이 춤을 출거야. 탭댄스는 남쪽이든 북쪽 땅이든 상관 없다. 한 뼘이면 충분하다”며 고집을 부린다.
이념 갈등을 초월한 탭댄스가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춤을 통해 자유와 정체성을 찾는다는 스토리 기본 뼈대는 서양 뮤지컬에서 빌려왔지만 분단 국가의 특수성을 잘 살렸다.
김태형 연출과 변희석 음악감독은 차별화된 스토리에 살을 잘 붙여 홈런을 쳤다. 특히 극 전개 강약 조절이 나무랄 데 업었다. 인민 처형으로 숨막히는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에 덩그렇게 놓여 있는 탭댄스 구두를 한참 바라보다가 극장을 나왔다. 형이 동생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다. 공연은 5월 31일까지 DCF대명문화공장. (02)541-2929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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