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174년 세월이 흐른 후 좀 더 강렬한 여인이 되어 관객을 찾는다. 유니버설발레단이 선택한 호주 안무 거장 그램 머피(65)가 그 변화를 주도한다. 6월 13~17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대에서 ‘그램 머피의 지젤’을 세계 초연한다.
20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만난 그는 “원작에서 지젤은 굉장히 부드럽고 서정적이다. 하지만 내 안무는 너무 어려워 심장이 약한 여자가 도저히 출 수 없다”며 웃었다.
원작에서 지젤은 남자에게 배신당해 죽은 처녀 유령 윌리가 된다. 순백 튀튀를 입은 윌리 24명의 군무는 처연하면서도 신비롭다. 그러나 순수한 자태와 달리 젊은 남자를 유혹해 죽을 때까지 춤추게 만든다. 그래서 머피 작품에서 윌리는 좀 더 악해진다. 윌리 18명 군무는 공격적인 복수극으로 변한다.
머피는 “항상 원작을 보면서 ‘처녀 귀신들이 왜 젠틀할까’라고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여인의 심정을 생각해 악령의 모습으로 바꿔놨다. 하지만 악도 때로는 아름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전 발레를 파격적으로 재해석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2001년 호주 발레단을 위해 만든 ‘백조의 호수’는 영국 찰스 왕세자와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 숨겨진 연인 카밀라의 삼각관계로 설정해 화제가 됐다. 백조 오데트에 비유된 다이애나가 정신 병원에 갇히는 충격적 결말을 만들었다. 성탄 발레 ‘호두까기 인형’도 노년의 클라라가 과거를 회상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에 왜 ‘지젤’을 선택했을까.
“지난 174년 동안 가장 변화가 없었던 작품이 바로 ‘지젤’이에요. 동작과 동작이 풀처럼 붙어 있는 것처럼 완벽하죠. 아돌프 아당이 작곡한 원작 음악을 들으면 원래 춤 동작이 계속 멤돌아 벗어나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결국 작곡가 크리스토퍼 고든에게 새로운 음악을 부탁했죠. 그제서야 비로서 새로운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물론 전통을 존중하면서 다른 각도로 접근했어요.”
그는 호주 발레단과 영국 버밍엄 로열 발레단을 거쳐 31년 동안 호주 시드니 댄스 컴퍼니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국내 발레단과 작업은 처음이다.
머피는 “춤은 수많은 사람들의 에너지가 얽히면서 만들어지는 작업이다.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데 유니버설발레단이 기꺼이 도전해줬다. 나를 믿고 몸을 맡겨줄 무용수들이 늘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말 아내인 조안무가 자넷 버논과 내한해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다. 현재 완성도는 50% 정도다.
“지금은 뼈대만 앙상하게 있고 살과 근육을 더 붙여야 해요. 주어진 음악에 맞는 춤은 모두 안무한 상태죠. 이제 무용수들이 조금씩 역할의 내면 세계를 이해하고 스며들기 시작했어요. 안무는 퍼즐 끼어맞추듯이 춤 동작들을 이어가야 해요.”
그는 협업의 힘을 강조했다. 의상 디자이너 제니퍼 어윈과 조명 디자이너 다미앙 쿠퍼 등 그의 오랜 동료가 작품 완성도를 높인다.
“의상 디자이너는 움직임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고 춤에 부담을 주지 않는 의상을 만들어야 해요. 나의 생각과 상상을 빛과 색깔로 표현해줄 조명 디자인도 중요하죠. 제 아내도 필요하고요. 제가 너무 멀리 달려가려고 할 때 다시 지상으로 데려오
머피가 19세에 첫 안무한 작품 주인공이 바로 아내였다. 뮤즈이자 동반자로 그의 작품세계에 창조적 영감을 불어넣어왔다. 공연 문의 070-7124-1737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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