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은 미국의 신문물을 시찰하고 온 사절단의 건의에 따라 1884년 에디슨 전기회사와 전등설비를 위한 계약을 맺고 1886년 11월 미국인 전등기사 매케이(McKay)를 초빙해 1887년 1월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발전소인 전기등소(電氣燈所) 를 완공했다. 발전규모는 백열등 750개를 점등할 수 있는 정도였으며 최초 점등일은 1887년 1~3월 무렵이었다. 이때 경복궁 건청궁 내 장안당과 곤녕합의 대청과 앞뜰, 향원정 주변 등을 밝혔다. 당시 향원지에서 물을 끌어올려 전기를 생산해 ‘물불’이라 불렀다. 불안정한 발전 시스템으로 건달꾼처럼 제멋대로 켜졌다 꺼졌다 한다 해서 ‘건달불’이라고도 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는 경복궁 흥복전 권역 중 영훈당이 있던 곳을 지난해부터 발굴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발전소이자 전기 발상지인 전기등소 터를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고종 연간에 건립된 영훈당은 흥복전과 향원지 사이에 위치해 내각 회의와 경연, 외국 공사 접견 등 왕의 편전으로 사용되다가 1917년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을 중건하기 위해 경복궁 내 다른 전각과 함께 철거됐다.
연구소는 이번 조사를 통해 그동안 향원지 북쪽과 건청궁 남쪽 사이에 있다고 알려진 전기등소 위치가 향원지 남쪽과 영훈당 북쪽 사이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석탄 원료를 보관한
창고인 탄고와 아크등에 사용한 탄소봉, 1870년이라는 연대가 있는 유리 절연체 등의 전기 관련 유물도 수습했다.
아울러 영훈당 터에서는 영훈당 본채와 함께 부속 행각지 등 건물터 6개 동이 확인됐다. 영훈당 칸 수와 용도는 궁궐지와 북궐도형의 관련 기록과 일치한다.
[배한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