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
그러나 무대 위로 21세기 최고 독일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46)이 등장하자 객석은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테너치고는 어둡고 탁한 음색 때문에 베르디와 바그너 오페라 전문가로 알려졌으나 낭랑하고 섬세한 고음에 깜짝 놀랐다.
소리의 한계를 극복한 테너였다. 독일 초정밀 기계처럼 정교하게 한 음씩 만들어가고 독일 전차처럼 엄청난 성량을 내뿜었다. 음폭은 드넓은 바다 심연처럼 깊고도 광활했다.
영화배우 뺨치게 잘 생긴 그는 강렬한 눈빛과 노래로 관객 2000여명을 홀렸다. 공들여서 한 곡씩 부를 때마자 마스크를 벗고 노래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메르스의 위력도 카우프만의 아성을 뛰어넘지 못했다. 1회 공연 개런티 1억원 이상 받는 전성기 테너의 최고 기량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R석 34만원 고가의 티켓이 아깝지 않은 무대였다.
가창력과 외모에 지성까지 겸비했다. 프로그램 구성이 매우 학구적이었다. 대중적인 오페라 아리아와 국내에서 듣기 어려운 오페라 아리아의 절묘한 조합이 빛났다.
치밀한 악보 해석과 정확한 발음, 뛰어난 연기력으로 이탈리아 작곡가 폰키엘리 오페라 ‘라 조콘다’ 아리아 ‘하늘과 바다’, 프랑스 작곡가 마스네 오페라 ‘르 시드’ 아리아 ‘전능하신 신이시여’를 노래했다. 오페라 ‘루이자 밀러’ 레치타티보 ‘내 눈으로 본 것을 부정할 수 있다면’과 아리아 ‘고요한 저녁 하늘이 별빛으로 빛날 때’를 통해 베르디 전문 가수의 진가를 발휘했다. 마치 CD를 듣는 것처럼 한 치 실수 없이 깨끗한 노래였다.
이용숙 오페라 평론가는 “아리아 ‘하늘과 바다’ 마지막 고음을 특유의 피아니시모 가성 창법으로 시작해 강렬한 포르티시모 진성으로 마무리해 콘서트홀을 흥분으로 가득 채웠다. ‘고음이 불안해서 종종 가성을 쓰는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논란을 잠재웠다”고 호평했다.
이 매력 넘치는 테너도 긴장을 했다. 무대 가까이 앉은 덕분에 그의 떨리는 입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심호흡으로 초조함을 밀어내고 혼신을 다해 절창을 들려줄 때 기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한 때 불안한 발성으로 고전했다. 노래 실력보다는 외모로 떴다는 비아냥도 들었다. 한동안 오페라를 피하고 가곡 무대에만 오른 적도 있다. 그러나 갖은 노력 끝에 소리 길을 여는 방법을 완전히 터득했다.
그는 늦깍이 성악도다. 뮌헨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다 성악으로 전공을 바꿨다.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 단역 가수로, 자동차회사 BMW 운전기사로 일하면서 성악가의 꿈을 이뤘다.
정상에 올라서도 정성과 열정, 성실을 겸비한 그의 노래에 관객들은 용수철처럼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객석의 열광에 감격한 그는 앙코르곡을 5곡이나 선물했다.
무대 출입문 너머 그가 펄쩍 뛰면서 기뻐하는 것을 봤다. 그러나 무대로 나와서는 엄숙하고 진중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세계적 테너에게서 보기 힘든 겸손과 관객에 대한 배려와 존경이 가득했다. 그의 뒤통수만 바라봤던 합창석 관객들을 위해 360도 회전하면서 레하르의 오페레타 ‘미소의 나라’ 중 ‘내 온 마음은 그대의 것’을 들려줬다. 소프라노 홍혜경과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이중창 ‘축배의 노래’를 부를 때는 왈츠도 췄다.
그의 첫 내한 공연이 완전히 끝나자 한 중년 여성 관객은 “노래 안해도 되니까 얼굴만이라도 보여줘”라고 외쳤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공연 기획사에 따르면 카우프만은 무대 뒤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감기에 걸릴까봐 사람들과 말도 잘 안 섞으며 예민하게 구는 여느 성악가와 달랐다. 친절한 카우프만은 분장실로 찾아오는 음악 관계자들과 악수도 나누고 기념 사진도 찍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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