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아니스트 박종화 |
최근 서울 광화문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클래식 음악가의 정체성으로 동요를 재해석했다. 곡에서 받은 영감을 작곡가 이영조, 나실인, 김준성과 의논해 편곡했다. 동요의 순수함을 배신하지 않고 증폭시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5세에 한국을 떠나 세계를 떠돌며 살아온 ‘피아노 유목민’ 박 교수는 동요에서 뿌리를 찾았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도쿄 음악대학 영재학교와 서울 선화예술중학교, 미국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악원, 이탈리아 코모 마스터 클래스, 스페인 마드리드 소피아 왕립 음악원 ,독일 뮌헨 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을 거쳐 프랑스 파리에서 살았다. 7개 국어가 가능한 그는 “내 모국어는 음악”이라고 말해왔다.
2007년 33세에 최연소 서울대 교수로 귀국한 후에도 이 땅에서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4세 딸이 듣고 있는 동요에서 정체성과 위안을 얻었다.
“유럽에 살았을 때는 한국인이라는 인지를 안했어요. 친구들 99%가 현지 사람들이었죠. 그들 문화에 흡수되어 아무런 생각없이 살았어요. 서울에 와서는 한국인인데 한국인이 아닌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죠. 그런데 딸과 함께 동요를 들으면서 할머니와 부모님이 옛날에 불러줬던 동요가 떠올랐어요. 동요가 들리니까 옛날 기억들이 깨어났죠.”
할머니가 불러준 ‘섬집아기’와 아버지가 들려준 ‘고향의 봄’이 가장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4세에 피아노 학원을 다닐 때였다. 피아노 앞에 앉기 싫어하는 아들 앞에서 아버지는 보란듯 ‘고향의 봄’을 연주했다.
박 교수는 “(연주가 서투른 아버지) 왼 손 반주가 안 변하더라. 너무나 거슬려서 내가 피아노를 연주했다. 연습을 다시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됐다”며 웃었다.
그를 과거와 연결시켜준 동요와 민요 11곡을 편곡해 음반 ‘누나야’를 발표했다. ‘고향의 봄’ ‘산토끼’ ‘엄마야 누나야’ ‘꽃밭에서’ ‘과수원 길’ 등 1900년대를 풍미한 동요와 아리랑, ‘새야 새야 파랑새야’ 등 민요를 피아노 솔로곡으로 편곡했다. 라흐마니노프 풍으로 해석한 ‘고향의 봄’, 록 블루스로 편곡한 ‘산토끼’ 등 실험 정신이 넘친다.
“제 뿌리를 찾기 위해 시작했는데 조금씩 동요와 가까워졌어요. 이제 제 삶과 같이 할 동요 프로젝트, 내 생애 사운드 트랙이 됐죠. 동요에 20세기 한국 경험과 시대 정신이 담겨 있어요. 서양 선교사가 전파한 찬송가 영향을 받은 동요는 서양 음악의 시작이죠. 서양 음악가로서 동요의 감성과 상징, 어린이 인권을 피아노 음악으로 되살리는데 사명감을 느꼈어요. 서양 작곡 기법 영향을 받았지만 우리 고유의 5음계와 떨림이 남아 있어요.”
그는 동요로 세대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 세대가 유년 시절 불렀던 노래를 자녀가 공감하면 소통할 수 있다.
이제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매운 음식에 적응한 그가 동요 연주회를 연다. 9월 20일 오후 5시 LG아트센터, 24일 오전 11시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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