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지는 정해졌고, 떠날 일은 남았습니다. 잠깐, 가방에 지적인 여정을 떠나기 위한 책은 넣으셨는지. 완벽한 휴가를 위해 매일경제 출판팀이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10권의 책을 골랐습니다. 상반기에 출간돼 주목 받았거나 아쉽게 묻힌 좋은 책을 두루 골랐습니다. 두꺼운 벽돌책은 없습니다. 소설과 비소설 각각 5권, 재미는 물론이고 지적인 자극을 주는 부담없는 책을 엄선했습니다.
<소설>
◆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그때 난 열일곱 살이었고 1952년 어둡고 비 내리는 북서태평양 연안에서 외롭고 이상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이제 난 서른한 살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살았는지 알지 못한다.” 작가로 보이는 화자는 지나간 시절을 회상한다. 자유로운 히피의 영혼이 충만한, 목가적 삶이 남아있던 그 시절을. ‘미국의 송어낚시’를 쓴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단편 62편이 빼곡히 실린 이 소설집은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그의 비극적 삶과는 별개로 생명력 넘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현대의 메마른 풍경의 근원을 찾아, 제1·2차 세계대전과 금주령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만나고 뿌리와 조우하는 이야기가 매혹적이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의 번역도 믿음직하다.
◆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출간된 지 50년만에 완벽하게 잊혀진 소설이 베스트셀러로 부활했다. 미국에서 평생을 문학 교수로 살았던 무명에 가까운 작가가 남긴 이 자전적인 소설을 되살려낸 건, 사후 20년이 지나 그를 뒤늦게 발견한 유럽의 독자와 평론가들이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문학을 사랑했으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자 했던 윌리엄 스토너. 세상의 기준에서 실패자와 다른 없는 삶을 산 한 남자의 생을 현미경으로 보듯 담담하게 묘사된다. 세계대전과 대공황 속에서도, 개인적인 불행과 사랑의 실패에 시달리면서도, 갑작스러운 병마와 싸우면서도 문학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기 않는 평범한 남자의 삶이 죽음으로 마지막 장을 쓰는 순간, 비범한 감동이 찾아오는 기묘한 소설이다.
◆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지음 / 민음사 펴냄
최근 명문대생들이 드는 ‘이민계’가 화제를 모았다. 이 사회성 짙은 이야기는 그들이 속내를 털어놓은 듯한 소설이다. 20대 후반 여성 계나는 서울의 4년제 대학을 나와 힘겹게 취업의 문턱을 통과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좋은 배경과 학력, 미모 등을 물려받지 않은 이들에게 이 사회는 잔인한 정글일 뿐. 가족과 남자 친구, ‘외국병’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호주로 무작정 떠난 계나는 눈물나는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시작한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대학원을 졸업하지만 사건에 휘말려 추방을 당할 뻔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다. 힘든 타향살이를 할 지 언정 희망없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주인공을 통해 ‘5포 세대’가 처한 쓸쓸한 현실을 고발한다. 청춘들에게는 청량제같이 시원한 소설.
◆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코타로 지음 /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내 인생, 남은 날은 여름방학이야. 숙제도 없이.” 어제는 고단했지만, 내일은 괜찮을 거라는 대책 없는 긍정적인 이야기야 말로 휴가에 어울린다. 일본 스타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이다. 변변찮은 직업도, 거처도 없이 떠돌면서 교통사고 사기단으로 하루하루를 적당히 대충 사는 밑바닥 인생, 미조구치와 오카다. 두 찌질한 사기꾼들은 느닷없이 나타난 사람들을 통해 뜻하지 않게 선의의 천사로 변신하게 된다. 학대당하는 아이를 위해 소동을 벌이고, 스파이 작전을 방불케 하는 전략을 펼쳐 스토커에게 시달리는 선생님을 구해내고, 자신들을 괴롭히던 보스를 위협하는 협박범을 찾기 위해 병원 건물을 발칵 뒤집기도 한다. 밑바닥 인생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미덥다.
◆ 밀리의 분실물센터
브룩 데이비스 지음 / 정연희 옮김 / 문학수첩 펴냄
7세 여자아이 밀리, 87세 할아버지 칼, 82세 할머니 애거서는 모두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아픔이 있다. 밀리는 개미 한 마리에게까지도 장례식을 치러주고 ‘죽은 것들의 기록장’에 이름을 기록하는 독특한 취미를 가진 소녀. 아빠가 병으로 돌아가신 후 실의에 빠진 엄마는 밀리를 백화점에 버리고 떠나지만 밀리는 요양원에서 달아나 숨어 지내는 칼, 세상과 벽을 쌓고 지내는 애거서와 엄마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예측불가능한 여행을 통해 이들은 결국 슬픔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여행은 삶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음을 가슴 뭉클한 세 사람의 유대와 사랑을 통해 보여주는 소설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문학상 수상자인 작가의 데뷔작.
<비소설>
◆ 타임푸어
브리짓 슐트 지음 /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펴냄
퓰리처상을 수상한 워싱턴포스트 기자 슐트에겐 고민이 있다. 두 아이의 엄마로 기사 쓰기와 같은 ‘일’은 물론이고, 아이 학교에 보내기, 밥 먹이기, 숙제 봐주기 등 ‘엄마 역할’도 짓눌리고 있었다. 결국 ‘타임 푸어’ 상황에 백기를 들고 시간 관리 전문가를 찾아 나선다. 존 로빈슨에게 ‘시간일지’를 써보라는 처방을 받은 뒤 그는 시간이 허덕이는 삶이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발견한다. 가정에서의 양성 불평등, 기업의 독소적 문화, 국가의 보육 정책에서 문제점을 발견한 것이다. 타임 푸어란 결국 ‘이상적인 노동자’와 ‘좋은 엄마’가 돼야 한다는 현대 사회의 압박이 시간 강박을 만드는 것이었다. 저널리스트답게 그는 제도나 환경을 국가 정책으로 어떻게 풀어가야할지 진지한 대안을 내놓는다.
◆ 위험한 과학책
랜들 먼로 지음 / 이지연 옮김 / 시공사 펴냄
빌 게이츠는 올 여름 읽을 7권의 책 중 하나로 이 책을 골랐다. 과학은 지겹고 어렵다는 편견을 깨주는 사이언스 웹툰. 실제로 광속구를 던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 바다에 구멍이 난다면? 스타워즈 요다의 힘은 측정할 수 있을까? 등 물리학, 화학, 천체물리학 등을 아우르는 황당하고 엉뚱한 궁금증을 미국항공우주국에서 로봇 공학자로 일했던 랜들 먼로가 답해준다. 예를 들어 레고로 다리를 놓는다면 무슨일이 생길까? 런던, 뉴욕을 잇는 다리 건설에 필요한 레고 블록 개수와 설계 방식을 알려 준 뒤, 이 레고 블록을 살 돈이면 런던의 모든 부동산을 사들여 조각조각 내 뉴욕으로 싣고 와도 돈이 남아 근사한 밀레니엄 팰콘 키트(레고 세트의 한 종류)를 살 수 있다고 재치있게 답한다.
◆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
아베 히로시·노부오카 료스케 지음 / 정영희 옮김 / 남해의봄날 펴냄
일본 겁없는 젊은이들의 시골 벤처 생존기다. 도요타의 엔지니어와 도쿄 벤처 기업의 웹 디자이너, 시민활동가. 서로 다른 경력의 청년들이 도쿄를 떠나 동해상의 외딴섬 ‘아마’로 향했다. 아마는 인구의 40%가 65세 이상이고, 지방 재정도 파탄상태. 이들이 만든 건 섬 학교다. 아마 섬 최고의 어부와 아마 섬 최고의 요리사 등 섬에 사는 장인들의 연륜을 나누는 리더십 인생학교를 만들어 본토의 대기업 간부에서 일반 개인들이 줄줄이 찾아오게 만들었다. 풍족한 대도시의 삶을 포기하고 자신의 신념과 놀이를 일에 녹여넣은 청년들의 분투가 만들어낸 기적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재정난 등 50년 후 일본에 도래할 사회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작은 섬에서 일어난 자본주의 실험이 흥미롭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지음 / 김희정 옮김 / 부키 펴냄
옥스퍼드대에서 윤리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하버드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에서 손꼽히는 의사 저술가 아툴 가완디의 신작. 지난해 전미 최고의 책 목록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렸다. 현대 의학은 바로 그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는 데 거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지만 죽음의 문제에 대해선 외면하고 있다. 이책의 질문은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다. 여러 호스피스 병동을 관찰한 결과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하게 하는 건 사소한 변화였다. 요양원 내에 동식물을 들이거나, 인근 학교와 연대해 아이들을 만나는 것 등었다. 고통스러운 연명 치료에 매달리기보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을지 고민하라는 조언이 묵직하다.
◆ 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지음 /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펴냄
쿡방의 시대다. 음식과 요리에 관한 관심이 어느때 보다 뜨거운 올 여름, 음식에 관한 인문학 이야기는 휴가 동반자로 제격일 것이다. 스탠퍼드대 대표 교양 강의 ‘음식의 언어’를 책으로 엮은 이 책은 토마토케첩 이야기로 시작된다. 언어학자인 저자는 케첩이 미국이 아닌 중국 음식이었다는 사실, 원래 주재료는 토마토가 아닌 생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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