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비운의 야구선수 김건덕의 이야기를 다루는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가 막을 올렸다. 귀에 쏙쏙 박히는 넘버와 소극장 뮤지컬임에도 무대를 가득 채우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관객들을 맞이하지만, 허술한 스토리의 짜임새는 한번 쯤 재고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는 1994년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이승엽 선수와 함께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천재 투수 김건덕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이다. “신은 내게 재능과 불행을 동시에 주셨다”는 극중 김건덕의 대사처럼, 실존인물인 김건덕은 고등학교 시절 촉망받는 선수였다가, 대학시절 어깨 부상과 이어진 사고로 ‘불운의 천재’ 혹은 ‘비운의 투수’로 불리는 인물이다.
2014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공연 선정에 이어 2015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 재공연으로도 선정되기도 했던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가 내거는 가장 장점은 바로 넘버다. 초반 고등학교 시절의 이승엽과 김건덕의 발랄함을 잘 드러내는 신나는 멜로에서부터, 후반 서정적인 멜로디는 한 번 들어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넘버가 좋아 회전문을 돌게됐다”는 후기가 나올 정도로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의 힘은 넘버 그 자체에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넘버도 넘지 못하는 산이 있으니, 바로 스토리다. 80년대 청춘물로 시작해 신파로 가다가 판타지로 끝나는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의 스토리 짜임새가 지나치게 유치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픽션극인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는 김건덕과 이승엽이라는 ‘사실’에다 어설픈 허구의 스토리를 덧붙이면서 내용을 단순하게 만들어 버리는 불상사를 낳고 말았다.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는 김건덕이라는 불운의 야구천재의 전성기와 몰락을 그리는 작품이다. 전성기의 김건덕은 유쾌하고 밝게 그려졌지만, 이후 닥친 불행은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못했다. 극의 후반부 이승엽과의 갈등 이후 어깨에 문제가 생겼음에도 ‘불완전 연소’를 외치며 경기에 임하는 김건덕의 캐릭터가 쉽게 이해되기 어려웠으며, 그 이후 닥친 모든 불행에 대해 “모든 것은 아버지 탓”이라고 말하는 모습은 마치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돌리듯 무책임해 보였다.
이 같은 문제가 생긴 이유는 극의 스토리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발생된 것이다.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가다’는 시범공연을 통해 관객들에게 선을 보인 작품이다. 시범 공연 당시 관객들에게 가장 많이 지적을 받은 부분이 ‘김건덕의 아버지’ 캐릭터였는데, 바로 자식의 성공을 위해 노예섬의 운영자, 즉 다른 이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인물로 그린 것이다. 시범공연 당시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가다’의 김건덕은 노예섬을 운영하는 아버지에 분노한 주민으로 인해 큰 부상을 입고 이후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이 같은 스토리에 대한 불만이 빗발쳤고, 결국 정식 공연에서는 노예섬에 대한 부분을 삭제하게 된다. 스토리는 삭제됐지만, 노예섬에 맞춰 만들어진 넘버와 가사는 그대로 이어졌고, 결국 이는 스토리 구성에 큰 허점을 만들고 말았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가 실화와 허구의 경계 속에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실제 김건덕 선수의 아버지는 노예섬과 전혀 관련 없는 수산시장에 종사했으며, 칼에 찔려 죽은 일도 없었다. 아무리 허구의 내용이 덧붙여졌다고 하지만, 충분한 설명도 없이 사실에다 허구를 붙인다는 것은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 되기도 하다. 이는 받아드리는 사람에 따라 충분히 불편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음악과 배우들의 가창력으로 잔잔한 인기를 올리고 있는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이지만, 이대로 가기에는 스토리가 지나치게 약하다. 극이 조금 더 긴 생명력을 갖기 위한 스토리 교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