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그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됐을 때 반응이 좋지 않았던 작품인데, 왜 한국에서 라이선스 공연을 올렸는지 잘 모르겠어요.”
인기스타를 앞세우고 국내공연을 올렸던 브로드웨이산 뮤지컬을 보고 온 업계 관계자는 적잖은 불평을 터뜨렸다. 잘 나가는 인기스타와, 브로드웨이 뮤지컬임을 앞세웠던 당시 이 뮤지컬은 인기를 끌며 수익을 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쉬운 연출과 그보다 더 어설픈 스토리로 일부 뮤지컬 팬들의 볼멘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출신의 라이선스 뮤지컬이 국내 뮤지컬계를 점령해 온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동안 높은 흥행성적을 거둔 것도, 배우들과 스테프들의 필모그래피를 풍족하게 채워준 작품도 대부분 이 범주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라이선스 뮤지컬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안정된 수익성과 검증받은 콘텐츠, 그리고 시작 전에 이름값으로 얻게 되는 홍보효과가 높다는 것이다. 이는 원작의 명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가치는 더욱 커진다. 아무리 뮤지컬을 접하지 못한 이들이라도 ‘세계 4대 뮤지컬’이라고 불리는 ‘오페라의 유령’ ‘캣츠’ ‘레미제라블’ ‘미스사이공’의 제목은 한 번쯤 들어보았고, 이는 이후 높은 수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점으로 많은 뮤지컬 제작사들은 수익성과 안정성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라이선스 찾기에 눈을 밝혔고, 국내 뮤지컬계에 세계 유수의 작품들이 소개돼 왔다. 하지만 모든 것은 과유불급. 어느 순간부터 라이선스 뮤지컬 의존도는 높아졌고 이는 과열현상으로 이어지면서, 한쪽으로 ‘쏠림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일각에서는 브로드웨이에서 실패했던 작품까지 무분별하게 국내 무대에 들여온 것이다. 2013년 뉴욕타임스는 “서울이 미국 뮤지컬의 신흥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보니&클라이드’와 ‘아가씨와 건달들’처럼 브로드웨이에서 실패한 작품들까지 수입해 한국어로 공연하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과열된 경쟁으로 라이선스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일부 외국 제작사들 사이 ‘한국은 봉’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 국내 라이선스 뮤지컬의 로열티는 같은 아시아권의 일본과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세계 뮤지컬 시장은 영국과 미국이 양분하고 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다. 웨스트엔드가 뮤지컬의 본고장이라고 한다면 브로드웨이는 뮤지컬을 대중 장르로서 부흥 발전시켜온 곳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만큼, 다른 나라에 비해 깊은 역사와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들이 즐비해 있는 것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뮤지컬의 본방이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이기 때문에 그만큼 국내관객에게 어필하는 작품 들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많아서 이 지역 중심으로 쏟아지는 것도 사실”이라며 “뮤지컬이 어찌됐든 대중문화인 만큼 상업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다. 제작사로서 작품성 외에도 수익적인 부분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일정 지역 뮤지컬의 쏠림 현상은 어떤 의미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평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뮤지컬이 압도적으로 많은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좋은 작품들이 영미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뮤지컬을 향유하는 국가가 점점 늘고 있는 만큼 아직 알려지지 않는 작품들이 숨은 보석처럼 발굴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체코와 같이 유럽 뮤지컬들이 국내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신흥 강자로 떠오른 것처럼, 이들 역시 폭발적인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하다.
지난 6월 진행됐던 제 9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하 딤프)에서는 다양한 세계 뮤지컬들이 소개됐었다. 이중 눈길을 끌었던 작품 중 하나는 ‘넌 리딩 클럽’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대만 뮤지컬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스윗 채리티’ 역시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독일 뮤지컬들을 소개하며 다양한 뮤지컬을 알리기도 했다. 뮤지컬 국제 교류의 교두보 역할을 꾀하는 딤프인 만큼 그동안 국내 뮤지컬에서는 접하기 힘든 제3의 국가 뮤지컬을 소개해 왔다. 올해 대만과 독일 뮤지컬 뿐 아니라, 작년에는 ‘마타하리’(슬로바키아) ‘몬테크리스토’(러시아) 등의 뮤지컬을 소개하면서 다른 문화권에서 다양한 뮤지컬을 공연하고 있음을 알렸다.
한동안 인터파크 티켓 랭킹 1위를 지켰던 ‘데스노트’는 옆 나라인 일본에서 들어온 라이선스 뮤지컬이다. 물론 최고의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김준수와 홍광호의 만남이라는 요소도 작용됐지만,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원작의 스토리와 잘 만들어진 넘버로 뮤지컬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공적인 초연무대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뮤지컬 관계자는 “영화 산업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초반 영화계에 할리우드 영화가 각광을 받았지만, 점점 영화 산업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국가에서 제작한 영화들이 국내에 소개되고, 또 그에 대한 수요가 늘지 않았느냐. 뮤지컬계도 같은 맥락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뮤지컬계가 점점 확장될수록 다양한 작품들을 원하는 관객들도 늘어날 것이고, 그 수요에 따라 무조건 ‘웨스트엔드’ ‘브로드웨이’가 아닌 국가와 상관없는 좋은 작품들이 들어오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