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안성은 기자]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투박한 부산 사투리와 거침없는 표현은 설레임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작품들과는 또 다른 맛을 선사한다. 그런데 그 또 다른 맛이 묘하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다이어트에 대한 독설부터 애견의 입장에서 쓰인 글까지. 독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게 된다. SNS 시인 이환천의 이야기다.
사실 학창시절, 반에 이런 친구들이 꼭 한 명쯤은 있었다. 재미있는 글을 쓰고, 수업시간에 배운 시를 활용해 친구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던. 그랬던 남자는 어느덧 10여년이 흐른 지금 SNS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저 체육 전공 했어요. 졸업 후엔 제약회사 영업부에 취직해 곧장 일을 시작했죠. 고등학교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즐겨하긴 했지만 흔히들 말하는 ‘문학소년’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의도치 않게 시작한 일들이 운이 좋아서 잘 풀리게 되었죠. 그래서 아직은 인터뷰라든가 ‘시인 이환천’으로 무언갈 하는 게 낯설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 사진=이환천의 문학살롱 |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그냥 재미있는 글을 써서 친구들을 웃겨주는 게 취미였죠. 그때 쓴 글들을 종종 제 개인공간에 올렸어요. 싸이월드라든가 다모임 같은. 그 글들이 차근차근 모여 페이스북 페이지 개설까지 가게 되었어요.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한 후엔 책을 발간하게 되었고요.”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사실 그는 몇 개월 전만 해도 호주에서 나름대로 여유로운 생활을 만끽하던 중이었다.
“회사를 그만 둔 후에 마지막 20대를 뜻 깊게 보내고 싶었어요. 호주로 떠났죠. 제가 호주에 있는 동안 문학살롱 페이지가 유명세를 탔어요.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죠. 당시엔 한국에 가서 처리할 생각으로 책 출간과 관련해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그러다 좋은 조건을 제의 받았고, 호주에서의 생활을 예상보다 빨리 정리하고 들어 왔어요.”
글 쓰는 것을 즐긴다고 하지만, 그것을 선뜻 ‘업’으로 삼기엔 무리가 따른다. 더군다나 그처럼 전문적으로 글을 배워 등단을 한 것도 아니고, SNS를 통해 유명세를 탄 사람에겐 꽤 큰 위험이 동반한다. 성공 여부가 미지수이기 때문. 그래서 그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 부모님께 ‘문학살롱’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
“소재가 자극적인 편도 있고, 표현도 거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알리지 않았어요. 친구들이 부모님께 제가 뭘 하고 다니는 지 말씀을 드리며 알게 된 거죠. 부모님이 제가 글을 쓰는 것으로 인해 걱정을 하진 않으셨어요. 원래부터 ‘뭐 해먹고 살 것이냐’는 걱정을 하셨던 분들이라…. 그래도 제가 이 일을 즐기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인정하고 응원해 주세요. 오히려 전 부모님의 걱정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섭섭한 마음이 들거나 그렇진 않아요. 저 마저도 불안정한 수입과 제 미래가 불안한데, 부모님은 당연하지 않으시겠어요.”
그는 자신의 글이 거칠고 투박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의 말처럼 그의 글에는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살아있다. 그러나 그 투박함 속에는 그 어떤 글보다 강력한 공감대가 숨어있다.
“제 글 자체가 예쁜 글, 다듬어진 글은 아니잖아요. 일상 생활에서 제가 하는 말들을 그대로 글로 적었기 때문에 사투리도 살아있고요. 아, 그 사투리를 썼다는 점이 부산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겐 특별하게 다가간 것 같더라고요. 저는 B급 감성을 자극하려고 했어요. 사회생활에서 느꼈던 고충들을 글로 풀고자 했죠. 늘 타겟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요. 더불어 친구들의 도움을 일단 많이 받아요. 제 친구들도 저처럼 보통 사람은 아니거든요. 다들 재밌고, 끼도 넘치고. 친구들과 이야기 하는 도중에도 영감을 얻곤 해요.”
그의 글이 투박한 것과는 달리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 이름, 시집명은 꽤 부드럽다. ‘문학살롱’. B급 감성을 품은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고급스러움을 보이는 느낌이다.
“문학살롱은 거창해 보이고 싶어서 썼던 이름이었어요. 다모임-싸이월드 때부터 사용했는데, 페이스북 페이지 개설도 ‘이환천의 문학살롱’이란 이름으로 하게 됐죠. 이렇게 될 줄 모르고 부렸던 ‘허세’라고 보면 됩니다.”
B급 감성. 그래서 그런걸까. 간혹 SNS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을 향해 비판의 의견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문학계를 망친다는 평과 함께, 그들의 글을 깎아 내리곤 하는 것이다.
“제가 문학을 전문적으로 배우거나,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친구들도 제게 술자리에서 ‘네가 문학에 대해 뭘 아느냐. 네가 쓰는 게 시냐. 네가 쓰는 건 시가 아니다’라고 말해요. 그럼 전 친구에게 되묻죠. ‘네가 외우는 시는 무엇이냐. 네가 아는 시인 이름은 무엇이냐’고. 그럼 대답을 못해요. 그럴 때면 복합적 감정이 들어요. 그들의 말처럼 제가 시에 대해 제대로 배운 사람도 아니고, 시인 타이틀을 제대로 쓰는 사람도 아니에요. 그래서 표지에 ‘시가 아니라고 한다면 인정하겠다’고 써뒀어요. 읽는 사람의 판단에 달렸어요. 말장난 혹은 시. 무엇이 되느냐는 독자의 판단이고, 전 그들의 뜻을 존중할 겁니다.”
“토크콘서트, 책, TV 등에서 유명인사들이 늘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을 해요. 그런데 쉽지 않잖아요. 학창시절부터 취업 후까지, 늘 하고 싶은 게 있죠. 그런데 늘 그 ‘하고 싶은 것’을 참고 살아야 해요. 겨우 여유가 생겨서 책을 사보면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하는데, 모순이죠.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기엔 쉽지 않은 인생이니까. 그럼 사람들은 당연히 혼란을 느껴요. 그래서 저는 그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산 사람의 인생을 보여주고 싶어요. ‘하고 싶은 걸 하고 살면 어떻게 되나 보자’라는 심보로요.”
이환천은 거창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친구들과의 술 한잔 속에서 힐링을 찾고, 큰 논란을 일으키고 유명세를 치르는 대신, 지금처럼 꾸준히 글을 쓰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는 과연 대중에게 어떤 존재로 기억되고 싶은 것일까.
“요즘 사람들이 웃을 일이 많이 없어요. 제가 그들에게 희망, 삶의 원천을 줄 순 없어요. 저도 그들과 비슷한 입장이니까. 다만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제 글을 보고 한 번 정도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 시를 뽑아서 벽에 붙여두고, 공유하고 그런 건 바라지 않아요. 그냥 지나가다 보며 피식 웃을 수 있는 그런 글, 그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안성은 기자 900918a@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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