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라리네티스트 자비네 마이어. |
1982년 9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그를 정식 단원으로 받아들일 지 결정하는 투표를 실시했다. 73대 4라는 압도적인 반대표로 입단을 거절당했다. 표면상으로는 마이어의 음색이 너무 튄다는 핑계를 댔지만 진짜 이유는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베를린 필은 ‘금녀(禁女)’ 오케스트라였다.
예술감독이었던 지휘자 카라얀(1908~1989)은 단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이어를 발탁했다. 그러나 입단 후 가시밭길이었다.
마이어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베를린 필에서 3여년간 연주하고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카라얀과 단원들 사이에 갈등이 심했다. 하지만 뛰어난 역량을 가진 연주자들의 완벽한 공연들을 잊을 수 없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카라얀은 그의 음악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지금까지도 강렬하다.
“카라얀 덕분에 따뜻하고 풍부하며 유연한 음색을 만들게 됐죠. 그가 강조한 오케스트라 음색과 균형, 클라이맥스는 많은 영감을 줬습니다.”
베를린 필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친 후 클라리네티스트로는 드물게 화려한 독주자로 변신했다.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의 러브콜을 받으며 ‘클라리넷의 여제’로 자리매김했다.
독주 뿐만 아니라 실내악에서도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 1983년 남편인 클라리넷·바셋 호른 주자 라이너 벨러, 오빠이자 클라리네티스트 볼프강 마이어와 함께 3중주단 ‘트리오 디 클라로네’를 결성했다. 레퍼토리 발굴과 다양한 편곡 작업을 통해 클라리넷의 지평을 넓혔다. 눈빛만 봐도 통하는 가족 트리오의 호흡은 절묘하다.
마이어는 “어머니 생일에 콘서트를 선물하기 위해 트리오를 결성했다. 나와 오빠가 태어난 마을의 작고 아름다운 교회에서 처음 연주했다”며 창단 배경을 밝혔다.
“굳이 리허설을 거치거나 대화를 하지 않아도 많은 일을 쉽게 진행할 수 있어요. 우리는 이미 서로가 어떻게 연주할 지 잘 알고 있죠. 부부와 남매 사이에 존재하는 강한 유대감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네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른 실내악 연주팀들과 같아요. 가족을 떠나 서로를 한 사람의 음악가로 받아들여야죠.”
이 트리오의 연주를 조만간 감상할 수 있다. 22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 23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24일 통영음악당 무대에 오른다. 이번에 피아니스트 칼레 란달루가 가세한다.
연주곡은 멘델스존 바셋 호른과 클라리넷을 위한 작은 협주곡 제1·2번, 슈만 환상소품집·로망스·카논 형식의 연습곡, 브루흐 클라리넷과 바셋 호른을 위한 8개의 소품 중 세 곡.
그는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들이 가장 사랑했던 악기가 바로 클라리넷이었다. 고결한 멘델스존, 풍부한 감정을 담은 슈만과 브루흐 작품을 골랐다”며 선곡 배경을 설명했다.
마이어는 실내악 예찬론자다. 혼자 밥 먹고 여행하는 독주자의 삶은 너무 외로운 반면에 마음 맞는 연주자들과 화음을 맞출 때 행복하다.
“가장 민주적이고 심도 있게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이 놀라운 기분을 놓치고 싶은 음악가는 없을 겁니다.”
그는 항상 음악의 본질에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음악은 쇼가 아니기 때문이다.
“연주자는 작곡가의 충실한 하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하고
그는 내한 공연 소감을 묻자 “작곡가 윤이상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곡가들 중 한 명이다. 그의 음악은 밀도 높고 감정이 풍부하며 아시아와 유럽의 조화를 잘 이뤘다”고 답했다. (02)2005-0114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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