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택 |
팔순이 넘은 조각가 이승택(83)은 역발상을 실천해 온 거장이다. 그는 “예술은 비트는 것이다. 내가 노끈을 주로 사용하는 이유도 그것이 비틀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대는 다르지만 역시 ‘미술계의 이단아’인 또 한 명의 조각가가 있다. 안규철(50·한예종 교수)이다. 그는 “재료를 엄청나게 다루고, 열정적으로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조각가의 덕목으로 여겨졌다. 난 이 관습에 맞서 질문하고 싶었다. 하찮은 재료를 가지고 혹은 재료를 최소화해서 어떻게 견고한 생각을 담을 수 있을까 하고.”
관습적인 조각의 장르를 뛰어넘는 작업을 해 온 두 조각가가 각각 대한민국 내로라 하는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이승택은 여든이 넘어 처음 작품을 팔아봤을 뿐더러, 그 첫 구매자가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이라는 다소 믿기지 않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노장이다. 그는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드로잉’전을 열고 있다. 대형 노끈을 벽에 설치한 작품, 캔버스에 노끈을 붙인 작업, 다수의 종이 드로잉과 돌을 노끈으로 묶은 초기작 고드렛돌도 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실험을 지속해온 그의 작품이 율동감 있게 펼쳐진다. 그는 긴 무명의 세월을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한 분투의 세월로 기억했다. 독창성이야말로 그만이 가진 비결이라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실험성 때문에 그는 “이것도 작품이냐”는 비아냥을 듣기 일쑤였다. 이북 실향민으로 홍대 출신인 그는 국내 최초로 방대한 카탈로그 레조네 작업도 진행중이다. 전시는 10월 18일까지. (02)2287-3500
‘조각가이면서 시인일 수는 없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한 안규철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전을 연다. 다분히 시적인 제목인데, 마종기 시인의 작품 제목을 차용한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후원을 받은 이 전시는 8점의 대형 설치물을 정갈하게 하나하나 펼쳐보인다. 맨 처음 눈에 띄는 작품은 ‘아홉마리 금붕어’라는 제목으로 물이 가득찬, 동심원 모양의 9개 트랙을 금붕어가 각각 돌고 있다. 각기 금붕어는 자신만의 트랙을 돌 뿐, 다른 금붕어와 만날 수가 없다. 고립과 단절은 이 전시에서 계속 변주되는 주제다. 그 다음 작품은 ‘피아니스트와 조율사’. 이 역시 서로 만나지 않은 채 소리가 해체되고 결국 침묵으로 나아간다. 카프카의 소설 ‘성’을 필사하는 작품 ‘1000명의 책’과 관람객들이 포스트잇에 단어를 써넣는 ‘기억의 벽’은 관객 참여형 작품. 검푸른 벨벳 커튼으로 구획된 64개의 방과 살아있는 화분을 마치 알렉산더 칼더의 조각처럼 공간에 설치한 ‘식물의 시간II’도 단절과 쓸쓸한 기분을 자아낸다. 마지막 작품은 제작비의 90%가 든 ‘침묵의 방’. 35t의 시멘트로 이뤄진 동그란 방이다. 목소리가 울리는 이 허공의 방에서 관람객은
작가는 “현대인의 고립과 격리, 단절과 분열은 심각한 문제다. 이걸 사랑의 세계로 바꿀 수는 없는가를 질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14일까지. (02)3701-9540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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