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시간의 법칙’이란 말을 만든 1993년 서베를린 음악 아카데미의 유명한 실험이 있다. 클래식 연주자를 모아 실험을 했더니 최고의 연주자 그룹은 지난 20년동안 약 1만 시간에 달하는 연습을 쌓아올렸지만, 우수한 집단은 그에 턱없이 못미치는 시간만 할애한 것을 발견한 것인다. 이후 1만시간 전문성의 법칙은 말콤 글래드웰의 책을 통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이 책은 글래드웰이 틀렸다고 단언한다.
스포츠 재능의 발현은 정말 복잡미묘하게 일어난다. 여기 두 높이뛰기 선수가 있다. 스웨덴의 스테판 홀름은 2004년 아테네 올릭픽 높이뛰기 금메달리스트다. 남들보다 작은 키에도 그가 세계최고가 된 것은 6살때부터 20여년에 걸친 피나는 훈련 덕분이었다. 무려 2만 시간이 넘는 시간을 그는 연습에 매달렸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모든 시간이 훈련이었고, 심지어 징크스 때문에 경기날에는 늘 같은 속옷을 입고, 양말도 오른쪽을 먼저 신었다.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모두가 그를 우승후보로 꼽았지만, 그의 앞에는 새로운 선수가 나타났다.
육상선수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슬램 덩크를 자랑하던 바하마 출신의 도널드 토머스였다. 미주리대의 육상선수들은 이 허풍쟁이의 콧대를 꺾어주려 체육관으로 그를 불러냈다. 그런데 자세도 방법도 엉망이었지만, 첫 점프에서 그는 1.98미터를 뛰었다. 다리를 공중에서 마구 휘젓는 이상한 자세로 2.13미터까지 넘었다. 당장 육상부 코치가 그를 대회 출전 명단에 넣었다. 두달 뒤 그는 호주 영연방 경기 대회에 테니스화를 신고 출전했고, 세계 4위에 올랐다. 연습을 ‘지루하다’고 여겨 잠시만 한눈을 팔면 농구장에 가 있는 토마스를 코치진은 구슬러 대회에 출전시켰고, 이 무명의 선수는 결국 2007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2.35m로 우승을 차지했다. 8개월을 연습한 초보자가 그것도 홀름을 누르고서.
핀란드의 한 신경근육연구소는 토머스가 키에 비해 다리가 길 뿐 아니라, 선천적으로 아킬레스건이 대단히 길다는 것을 알아냈다. 타고난 신체 조건을 이길 수 있는 노력은 없었던 것이다. 엡스타인은 엘리트 선수들이 최고 수준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각자 엄청나게 다르며, 1만 시간이 걸리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야구, 필드하키, 레슬링에서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각각 평균, 4000, 4000, 6000시간에 불과했다. 심지어 슈퍼스타들은 종종 여러 스포츠를 하면서 어느 분야가 좋을지 따져 보다 한가지를 고른다. 테니스 슈퍼스타 로저 페더러는 어린시절 배드민턴 농구 축구를 했고, 우사인 볼트의 꿈은 크리켓 선수였다.
핀란드 스키선수 에로 멘튀란타의 이야기도 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매일 얼어붙은 호수 위를 스키를 타고 통학해야 했다. 젊은 때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해 스키 타는 일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위험한 벌목 일에서 벗어나 국경 순찰대원이 되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인생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빈약한 기대감이 그의 인생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벌목일을 마치고 나면 그는 매일 혹독한 겨울 밤을 홀로 고통을 견디며 훈련했다. 하루에 무려 80㎞를 달렸다. 22세가 되자 그는 올림픽에 출전할 실력이 되었다. 1964년 동계올림픽 크로스컨트리 1만5000미터 경기에서 그는 2위보다 무려 40초나 먼저 결승선에 들어섰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1,2위의 격차가 그렇게 벌어진 적은 없었다. 이전까지 그의 집안에 다른 운동선수는 단 한명도 없었다. 멘튀란타야 말로 1만 시간의 법칙을 증명할 만한 선수다. 하지만 그의 집안 사람들조차 일반인보다 혈중 헤모글로빈 농도가 확연히 높아 운동에 적합한 유전자를 지녔음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저자가 1만시간의 법칙을 비판하는 이유는 선천적인 차이점을 고려하지 않고서, 부적절하게 강도높은 연습에 어린 선수들을 밀어넣는 엘리트 교육의 부작용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엡스타인은 자신이 유전자의 힘만 맹신하는 결정론적인 입장에 있지 않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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