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뮤지컬 ‘인 더 하이츠’는 국내 관객들에게 생소한 뮤지컬 중 하나다. 맨해튼 북서부 워싱턴 하이츠라는 낯선 장소와 그보다 더 낯선 이민자들의 삶과 애환, 그리고 뮤지컬 무대에서 흔히 활용되지 않는 스트릿댄스와 랩, 그리고 라틴힙합까지, 그 요소요소를 살펴보면,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을 제외하고 그 어느 하나 익숙한 것이 없다.
중남미계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인 워싱턴 하이츠에 살아가고 있는 우스나비와 바네사, 베니, 니나는 각자가 처한 가난과 차별, 갈등을 겪고 있는 청춘이다. 우스나비는 폭동으로 인해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가 망가지게 되고, 바네사의 경우는 집세를 낼 돈이 없어 쫓겨날 처지에 놓이며, 니나는 등록금이 없어 잘 다니고 있던 스탠포드를 휴학하고, 니나를 사랑하는 혈혈단신 베니는 니나 부모의 격렬한 반대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던 중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우스나비의 할머니 클라우디아가 9만6000달러에 달하는 복권에 당첨된 것이다. 클라우디아는 우스나비와 함께 고향으로 떠나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눈을 감게 되고, 막대한 당첨금은 우스나비에게 돌아가게 된다. 원래의 계획대로 워싱턴 하이츠를 떠나려던 우스나비는 클라우디아가 남긴 돈으로 자신의 망가진 가게를 손질하며 정든 거리를 지키기로 결심한다.
‘인 더 하이츠’는 국내 라이선스 공연이 어려운 작품 중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민자들의 나라가 아닌 만큼 관객들이 이들의 고민에 공감하기 어려우며, 그렇다고 각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을 강조하기에는 스토리가 지루하고 진부하게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민자들을 소외된 이웃으로 해석, 가난과 차별 속에서 괴로워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이야기를 풀어낸 ‘인 더 하이츠’는 결과적으로 국내화에 성공한 뮤지컬로 꼽힌다. 이들의 이야기는 힙합, 스트릿댄스, 레게, 랩, 라틴 팝 등이 적절히 조합된 음악 속에 녹아들며 흥겨움과 동시에 감동을 배가시킨다.
◇ 원미솔 음악감독, ‘인 더 하이츠’와 첫눈에 반하다
‘인 더 하이츠’의 음악은 ‘지킬 앤 하이드’ ‘드림걸즈’ ‘베어 더 뮤지컬’ ‘드라큘라’ ‘해를 품은 달’ 등 유수의 작품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아온 원미솔 음악감독이 담당했다. 원미솔 음악감독이 ‘인 더 하이츠’에 빠져든 것은,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공연됐던 2008년도였다. 당시 다른 작품을 작업하다가 ‘인 더 하이츠’를 접하게 된 원미솔 음악감독은 대표넘버 중 하나인 ‘96000’을 듣고 순식간에 음악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96000’에 홀릭 돼서 여기까지 왔다. ‘96000’을 듣고 얼마나 많이 사람들에게 추천을 했던지, 제 옆에 있는 배우들 중에서 안 받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랩이 한창 펼쳐지다가 바네사가 솔로로 노래를 부르는데, 정말 좋아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시쳇말로 ‘심쿵’한 것이다. 지금은 그때의 감흥이 사라져서 슬픈 것도 있는데 그만큼 정말 좋았다.”
원미솔 음악감독의 대표작들을 보면 힙합보다는 클래식한 감성의 음악들이 더 많았다. 뮤지컬에서 힙합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작업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을까.
“힙합을 원래 좋아한다. 그래서 뮤지컬 ‘런투유’도 했었고, 작곡을 할 때도 힙합을 꼭 하나씩 넣기도 했다. 랩도 좋아한다. 힙합이라는 장르가 제게 있어 어색한 영역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인 더 하이츠’가 워낙 어려워 쉽지 않겠구나 했다. 운 좋게 하고 싶었던 작품을 하게 돼 기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겁도 많이 났다. 실제로 작업을 시작하니 생각보다도 라틴리듬이 너무 많아, ‘내가 이 맛을 우려낼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다. 장르파악에 대한 공부를 아주 뛰어나게는 아니겠지만 최선을 다했고, 연주 역시 철저하게 준비했다.”
◇ 특명 ‘인 더 하이츠’ 원작의 맛을 살려라
이지나 연출이 작품의 각색방향을 잘 잡았다며 자신의 생각을 밝힌 원미솔 음악감독은 극의 포커싱이 단순히 인종과 인종이 아닌 갑과 을, 소시민으로 맞춰졌다고 작품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보였다. 원미솔 음악감독이 말하는 ‘인 더 하이츠’는 자극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극 자체만 봤을 때 남녀노소 보기 좋을 정도로 따뜻한 작품이었다.
작품의 연출이 잘 풀렸다고 말한 원미솔 음악감독은 ‘인 더 하이츠’의 편곡 방향을 어떻게 잡았을까. 이에 대해 원미솔 음악감독은 원작의 매력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우리의 정서 살리기라고 설명했다.
“‘인 더 하이츠’의 음악작업을 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바로 정서였다. 외국에서는 슬픔의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이 우리나라와 다르다. 외국에는 신파가 없다보니, 할머니다 돌아가시거나 딸이 돈이 없어서 휴학을 하는데도 자조적으로 쿨하게 풀어낸다. 반면 우리는 정이 많고 한이 있는 민족이지 않느냐. 그러한 감정을 조금 더 파고들면서, 한국식으로 정서를 호소했다. 그렇다고 음악을 많이 편곡한 것은 아니었다. 배경음악을 주로 작업을 하고, 다른 넘버들은 최대한 원작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 “웃음이 넘쳤던 ‘인 더 하이츠’ 작업하는 내내 즐거웠어요”
인터뷰 내내 밝고 유쾌했던 원미솔 음악감독은 ‘인 더 하이츠’을 올리기 전 연습도 즐거웠으며, 현재도 행복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작업을 하는 내내 힘들지 않았다. 원래 분위기가 작품 따라 간다. ‘지킬 앤 하이드’를 할 때는 늘 우울함이 있었는데, 소시민들의 밝게 미래를 알리는 ‘인 더 하이츠’는 연습을 할 때부터 분위기가 밝았다. 배우들도 잘 따라주었고,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작업을 했다”
초반 ‘인 더 하이츠’가 눈길을 끌었던 이유 중 하나는 실력파 뮤지컬 배우 뿐 아니라 바로 인기 아이돌 멤버들과 배우들이 총집합했기 때문이다. 인피니트 성규와 동우, 샤이니의 키, 엑소의 첸, 에프엑스 루나를 비롯해 배우 양동근 또한 합류하면서 화제를 모았었다. 뮤지컬에서 아이돌 캐스팅은 양날의 검과 같다. 높은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반면, 다른 뮤지컬 배우와 비교했을 때 부족한 실력과 바쁜 스케줄로 인한 연습실 결석으로 자칫 잘못하면 극의 분위기를 와해시킬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원미솔 음악감독은 ‘인 더 하이츠’를 통해 많은 아이돌과 합을 맞추게 됐다. 이렇게 많은 아이돌들과 작업한 적은 처음이라고 말한 원미솔 음악감독은 이후 배우 자랑에 들어섰다.
“아이돌들의 스케줄은 무척이나 바쁘다. 너무 바빠서 이쪽 스케줄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럼에도 불편함이 없었던 것이 그 친구들의 치열한 삶이 보였고, 그 와중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해 왔기 때문이다. 잠도 안자고 새벽까지 대본을 숙지해 오는 배우들을 보면서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 어려도 존경스럽더라. 대체로 성실하게 연습을 해왔고, 연습에 빠져도 못 나간 부분을 숙지해 오더라. 모든 아이돌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인 더 하이츠’에 출연한 성규나 동우, 키, 첸, 루나 모두 성실하더라. 와해될 소지가 없었고, 지금 와서 보니 그 조차 복인 것 같다.”
원미솔 음악감독은 배우와 무대, 안무와 음악 등 모든 합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최고의 조합이 탄생했다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다른 무엇보다 사람들과의 작업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원미솔 음악감독은 앞으로도 길이보다는 깊이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소망을 털어놓았다. 진심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