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계속해서 스스로를 착취하잖아요. 피로한 상태로 살아가죠. 그러면서 이상적인 이성을 만나 자신의 고통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인 거예요. 바그너도 그랬죠.”
오페라는 어렵다. 특히 바그너의 오페라는 특유의 상징성 가득한 줄거리와 캐릭터, 때로 15시간에 달하는 공연시간과 난해한 독일어 가사 때문에 오페라를 자주 접해보지 못한 관객들을 지레 겁먹게 하곤 한다.
세계적인 베이스 연광철 서울대 교수(50)는 바그너 오페라에 대한 이 같은 ‘마음의 벽’을 이번 기회에 허물어보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오는 18일부터열리는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연습에 한창인 그를 9일 오후 예술의전당 연습동에서 만났다.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초기 오페라인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바그너가 직접 대본을 쓰고 작곡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작품이다. 죽지 못한 채 유령선을 타고 영원히 바다를 떠돌아다니던 네덜란드인 선장이 진정한 사랑을 찾아야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북유럽 전설을 소재로 한 독일 작가 하인리히 하이네의 소설 속 일부 내용이 모티프가 됐다. 재물에 혹해 자기 딸을 네덜란드인 선장에게 소개하는 ‘달란트’라는 인물이 연 교수의 배역이다.
“어떤 이들은 달란트가 딸을 돈 많은 사람에게 판다고 비판하는데, 사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사냥꾼보다는 돈 많은 선장이 낫잖아요? 경제적 개념에 충실한 아버지인 셈이죠.” 그는 요즘 사람들의 시각에서 작품과 등장인물을 소개했다. “사실 바그너의 작품은 어느 시대에 맞춰 읽어도 굉장히 현실적이에요.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본질에 있어서 지금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처럼요.” 연출도 모던하다. 이번 작품에서 17세기 유령선이 떠다니던 원작의 배경은 50년 전 산업화가 시작된 한 연안의 고래잡이배로 탈바꿈했다.
바그너의 작품을 줄줄이 꿰고 있는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바그너 스페셜리스트다. 이번 작품의 ‘달란트’ 역할만 벌써 30여 번째. 최고 권위의 바그너 오페라 축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탄호이저’, ‘발퀴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주요 배역을 맡았고, ‘파르지팔’,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바그너 주요 작품을 거치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런던 로열오페라, 파리오페라 등 세계적 무대의 단골 손님이 됐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제 역할은 (바그너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훨씬 가볍고 코믹하다”며 “바그너 오페라 중 스토리와 선율이 쉽고, 공연시간도 짧아 편하게 즐기실 수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엘리트 코스만을 밟았을 것 같은 이력인 연 교수는 사실 충북 청주공업고등학교 출신. 독학으로 음악 공부를 시작해 청주대 음대에 들어갔고 아버지가 시골에서 소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불가리아 소피아 음대로 유학을 떠났다. 온갖 난관을 뛰어 넘어 정상에 올랐지만 그는 ‘스타’라는 칭호에 질색한다. “음악은 제 업이에요. 스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음악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딜 가든 새로운 관
음악만이 ‘삶의 기쁨’이라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70대 중반까지 노래하고 싶다는 그의 이번 무대가 보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감동을 샀으면 한다. 공연은 18·20·22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문의 1588-2514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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