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개막한 스페인 최고의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맨 끝줄 소년’(김동현 연출)은 올해의 연극으로 꼽혀도 손색없을 서늘한 걸작이다. 표면적으로는 17세 소년 클라우디오와 교사 헤르만의 작문 수업에 관한 극. 하지만 소년의 글을 매개로 극은 문학에서의 진실과 허구에 대해, 개인을 옭죄는 가족에 대한 방대한 질문을 던진다. 네 개의 책상과 의자뿐인 미니멀한 무대지만, 연극이 그리는 서사의 세계는 거대하게 확장된다. 문학에 관한, 삶에 관한 관능적인 은유. 마치 105분간의 문학 수업을 듣는 것 같았다.
형편없는 학생들의 작문에 지쳐가던 교사 헤르만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 건 클라우디오의 과제였다. 소년은 친구 라파의 가족에 관한 은밀한 비밀을 글로 써냈다. 소설처럼 생생하게. 헤르만은 아내와 함께 글을 읽는다. 농구를 좋아하는 유쾌한 라파와 그의 아빠, 그리고 아름답고 우아한 엄마. 겉으로는 화목해보이지만 곧 허물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중산층 가족이다.
친구의 집이 아늑하게 밝혀진 방이라면, 불행한 가족사를 지닌 소년의 마음은 불이 들지 않는 방과 같았다. 그 어두운 심연(深淵)에 창작의 신이 내려앉았다. 타인의 고독을 매만지고, 자신의 어둡고 폐쇄적인 자아를 투영해 써내려간 글. 소년은 신이 내린 재능이 있었다. 선생은 게걸스레 소년의 글을 독촉한다. 디킨스, 체호프, 세르반테스, 토마스 만…. 소설을 건내주면 소년은 거장들의 문학을 빨아들이듯 글에 녹여냈다. 하지만 위험한 도박이었다. 글을 위해 라파의 집으로 들어가 친구의 과외를 하기 시작한다. 소년에게 금기(禁忌)란 없었다. 집을 속속들이 엿보고, 심지어 친구의 엄마를 시를 써주며 유혹하는 모습에 헤르만은 혼란스러워진다. 위태로운 소년이 어디까지 나아가게 둬야하나.
극은 세갈래 갈등의 축을 따라 출렁거렸다. 선생과 소년, 선생과 아내, 소년과 친구의 엄마. “더 좋은 글을 쓰렴”(선생이 소년에게), “당신은 그 아이를 멈추게 해야해”(아내가 선생에게), “나를 거부하지 마세요.”(소년이 친구의 엄마에게)
헤르만의 아내는 “문학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못해. 예술도 마찬가지야”라고 외치지만, 이 연극은 예술이 누군가의 삶에 어떤 거대한 영향력을 끼치는지 항변하는 듯했다. 클라우디오 역의 전박찬과 헤르만 역의 박윤희가 벌이는 팽팽한 연기대결은 연극의 활강을 지탱했고, 코러스 3명이 육성으로 만들어내는 기묘한 음악의 분위기도 독특한 질감을 더했다. 이 극을 프랑소와 오종이
공연은 12월 3일까지. (02)580-1300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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